새해 소망
새해 소망
  • 이수안 <수필가>
  • 승인 2016.01.03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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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대는대로 붓 가는대로
▲ 이수안

나의 책장 맨 아래 칸 왼쪽에는 <농어촌여성문학>이 나란히 꽂혀 있다.

농어업이 생업인 여성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는 25년 전에 창립되었다. 그때만 해도 농어촌 어르신들의 정서는 보수성향이 강하고 전통을 매우 중시했다. 그것이 부정적인 것은 아니나, 인간 개인의 개성이 존중받지 못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게다가 농어촌의 고단한 살림살이는 문학을 향한 촌부들의 마음에 부싯돌 역할을 했고, 그 열망이 모여 문학회가 창립된 것이다.

지난주 그러니까 작년 12월 마지막 주 월·화요일에는 <농어촌여성문학> 제21집 출판기념식 및 문학 강의가 서울에서 있었다. 일 년에 두 번 있는 행사 중의 하나였으니 그 반가움을 어찌 다 말할 수 있으랴. 한 사람씩 또는 두세 사람씩 행사장으로 들어설 때마다 반가움에 얼싸안았다. 삼천리금수강산 방방곡곡의 논밭에서, 축사에서, 염전에서, 구슬땀 흘리던 얼굴 얼굴들. 여름 문학세미나 때는 까맣게 탔던 얼굴이 겨울이라고 훤해졌다며 덕담을 나누었다. 그리고 쏜살처럼 지나가 버린 일박이일이었다.

일상으로 돌아온 지 며칠 지났건만 마음은 아직 일박이일의 외출에 머물러 있다.

일 년에 두 번의 모임이 이렇게 기다려지는 것은 잘나고 못나서를 떠나, 글의 작품성을 떠나 서로 안타까이 여기는 이심전심이 있어서다.

제21집을 빼 들고 책장을 넘긴다. 남편과 농약을 뿌리다가 소독약 줄을 잡고 쩔쩔매던 문우는 좋은 기계로 농약 살포를 한다며 농업의 변천사를 이야기한다. 글이 어찌나 구수한지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애석하게도 농산물 가격 폭락 때문에 고통받는 내용은 자주 등장한다. 어떤 이는 우리 작품집을 본 뒤 부정적인 시각이 많은 것을 지적했다. 그러나 나는 그리 생각지 않는다. 글은 거짓으로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농사가 생업인 사람들에게 농산물 가격은 그 삶에서 절반 이상의 영향을 받는다고 본다. 그런데 수입농산물 때문에 야기된 가격폭락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도저히 극복하기 어려운 현실을 정직하게 썼다면 농업을 조금 이해해 주는 독자의 아량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내친김에 <농어촌여성문학> 작품집을 몽땅 꺼내서 화보를 펼쳐본다. 각 작품에 농어촌의 최근 역사가 담겨있다면, 화보에는 문우들의 역사가 담겨 있다. 20집, 19집, 18집…. 과거로 갈수록 회원들의 얼굴이 젊어지더니 창립총회 때 사진에 이르자 모두 싱그러운 새댁 얼굴이다. 25년 전의 생기 넘치는 내가 갓 예순이 된 지금의 나를 향해 봄꽃 같은 웃음을 짓는다.

다시 21집의 화보를 본다. 대체로 오륙십 대 나이의 얼굴들이 너그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 농촌에 젊은이가 없음을 말해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창립총회 때의 젊은 얼굴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에 위기감을 느낀다. 도시로 가서 새댁들을 빌려 올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 바통을 누구에게 넘겨줘야 하나. 새해 소망이 하나 늘었다. 병신년에는 삼사십 대 파릇파릇한 신입 회원이 대여섯 명쯤 들어오는 경사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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