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을 담은 도시재생사업으로
시대정신을 담은 도시재생사업으로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5.12.20 2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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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연지민 취재3팀장(부장)

청주의 담배공장이 문화공장으로 거듭날 전망이다. 지난 15일 국토부로부터 청주시도시재생 선도지역활성화 사업이 최종 승인되면서 옛 연초제조창 건물에 대한 정비가 내년에는 본격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주의 옛 연초제조창 건물은 해방 후 1946년에 문을 열고 50여 년 전성기를 구가하며 담배산업을 주도했지만, 시대의 변화에 밀려나면서 10여 년을 도심의 흉물로 취급받았다. 워낙 큰 덩치의 부지와 건축물은 방치되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될 위기도 겪었다. 하지만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전시장으로 활용되면서 담배공장은 22세기 청주의 랜드마크로 복합문화공간이란 해법을 찾아가고 있다.

주변 여건도 이곳이 청주 문화산업의 중심지로 부상할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옛 연초제조창 건축물 일부에 국립현대미술관이 청주관 건립을 확정했고, 7개 동부창고는 리모델링을 통한 시민예술촌으로 조성한다는 계획 속에 3개 동은 공연장과 생활문화센터로 운영에 돌입했다. 여기에 비엔날레가 열렸던 전시장은 복합문화레저시설이란 이름으로 비엔날레 상설전시관 등이 기획 중이다. 또 중장기 계획 속에는 기존 건축물을 활용해 연초제조창 일대를 문화와 예술을 접목한 문화산업단지로 조성하겠다는 전략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청주의 역사성을 담아내겠다는 산업전략은 민자유치사업 쪽에서 어그러지는 모양새다. 20층 높이의 비즈니스호텔과 비즈니스센터가 연초제조창 건물 앞면에 들어설 것이 유력해지면서 신·구 건축물의 부조화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시에서 민자유치하고자 계획하고 있는 부지는 위치상으로 볼 때 증평과 진천에서 청주 도심으로 들어오는 입구이다. 주변 도로를 개선한다고는 하지만 고층빌딩부터 시야를 잠식하는 도시건축은 첫인상부터 답답한 느낌을 안겨줄 수 있다. 더구나 연초제조창 건축물이 그 가치를 인정받아 이루어지는 도시재생사업임을 고려할 때 고층빌딩이 연초제조창을 가로막고 있어 이런 방식의 도시건축은 미학적으로 조화롭지 못하다. 어떤 방식으로 신축 건물이 지어질지 미지수지만 오래된 건축물과의 조화는 높이부터 고려해야 할 것이다.

1700억원의 막대한 사업비를 민자유치로 추진해야 하는 시의 고민도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당장의 민자유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100년 뒤 청주의 랜드마크로 조성돼야 한다는 점이다. 10년간 방치됐던 흉물이 또 다른 도시슬럼가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건축의 역사성과 청주시민의 내력, 청주의 미래 가치를 담아내기 위한 고민과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건축물 하나도 도시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강원도 양구군 박수근 미술관을 찾은 적이 있다. 그곳에서 미술관을 설계한 이종호 건축가의 글귀가 오랫동안 가슴에 머물렀다. ‘건축이 선다는 것은 땅이 가진 질서를 지워가는 행위이다. 오래전부터 지속하여 온 땅의 형상을 파괴하는 것은 누군가에는 기억을 지워버리는 행위이며 그 장소가 가지는 정체성을 훼손하는 행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골짜기의 논처럼 오래전부터 주변 산세와 어우러져 단단히 펼쳐지는 이 땅의 질서를 보존하는 것이 낯설지 않은 풍경 속에서 가장 박수근스러운 소박함과 그의 작품세계를 대변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미 박수근미술관을 설계할 때부터 자연의 질서에 존중하는 형태로 계획하였다. 오히려 능선에 묻혀 이곳 능선자락에 생명력을 불어넣고자 했던 것이다.’

청주 연초제조창에 필요한 건축물이야말로 바로 이런 시대정신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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