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서리 내린 날의 충격
첫서리 내린 날의 충격
  • 이수안<수필가>
  • 승인 2015.12.06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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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이수안<수필가>

어느덧 한 해의 마지막 달이다. 달랑 한 장 남은 달력에 전에 없이 심란해진다.

해마다 맞이하고 보낸 12월이건만 올해 유독 얄궂은 마음이 드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 해가 저물면 예순의 반열에 드는 내 나이가 믿어지지 않아서다.

예순이라…. 마흔의 나이에 들 때도, 쉰의 나이에 들 때도 그저 덤덤했다. 그런데 지금은 왜 이다지도 허허로울까.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거의 모든 에너지를 농사일에 쏟으며 걸어왔다. 온 힘을 기울였지만 원체 야무지지 못한 농사꾼이라 남 앞에 번듯하게 내놓을 만한 농사는 아니었다. 매사 조금씩 부족했지만 부끄럽지는 않다. 지난 여름의 뙤약볕 못지않은 열정으로 매 순간 뜨겁게 살아온 결과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담담해야 마땅하거늘, 거울 앞에 선 가슴으로 서늘한 바람이 한 자락 이는 것은 어인 일인가. 늘어진 눈꺼풀, 팔자 주름, 풍부한 허리가 오늘 유난히 거슬린다. 어디 그뿐이랴. 오래 써먹은 기계처럼 헐거워진 뼈마디 마디가 이제는 나이에 맞게 처신하라며 삐거덕 거린지 한참이지 않던가. 이 몰골이 되도록 육신을 마구 부려 이룬 것은 무엇일까.

과수원으로 차를 몰았다. 엊그제 내린 함박눈이 아직도 과수원을 고즈넉하게 감싸고 있다. 야외무대와 원두막 주위의 나목들이 내 시선을 잡는다. 느티나무와 이팝나무 그리고 단풍나무다. 십년생은 족히 된 것을 심어 지금까지 컸으니 스무 살은 족히 되었을 나이다. 이 나무들은 앞으로도 오랜 세월 자라고 자라 예순 나이쯤에는 내가 상상하던 우람한 풍경을 만들어 낼 것이다. 수관을 확장하면서도 그 연륜에 걸맞는 위엄도 함께 갖추게 될 나무. 만물의 영장이 인간이라지만 이 나무 앞에서 나는 스스로가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지 깨닫는다. 살기 위해 발발거리며 뛰어다녔지만 늘 원하는 바에 미치지 못했다. 바쁘기만 한 나의 삶은 뭇 여자들이 꿈꾸는 우아한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늘 치열했던 삶이 예순 나이에 걸맞은 인격은커녕 억새보다 거친 내면을 키워 온 건 아닌지. 하여 이 나이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처럼 온갖 상념에 잠기는 것은 아닌지.

5~6년 전에 나는 후배와 황금 들녘으로 메뚜기를 잡으러 간 적이 있다. 깊어가는 가을날 서리가 하얗게 내린 이른 아침이었다. 우리는 논둑에서 죽은 듯이 꼼짝도 않는 메뚜기를 그냥 줍기만 하면 되었다. 따스한 낮에 벼 잎에서 놀다 해거름이면 냉기를 피해 논둑의 덤불 속으로 몸을 숨긴 메뚜기들이었다. 그렇게 굳은 몸으로 밤을 새우다가도 기온이 올라가면 다시 벼 잎 속으로 가서 햇볕을 즐기는 메뚜기들. 그렇게 메뚜기는 단숨에 생을 마감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조금씩 몸이 굳어가는 것을 받아들이며 마지막을 맞는 것이었다.

오늘 내 가슴에 인 서늘한 바람은 어쩌면 메뚜기가 겪은 첫서리 내린 날의 충격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예순을 살면서 몸은 더 허벅허벅해지고 거칠기만 하던 내면도 서서히 동그랗게 마모되어 갈 것이다. 어느 날은 충격이다가 또 어느 날은 받아들이기를 반복하면서 일흔을 맞고 그리고 여든…. 그렇게 서서히 늙어가는 동안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 삶인지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첫서리가 실감나지 않는 나는 나이를 더할수록 위엄을 갖춰가는 나무가 부러운 소인배임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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