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말자 그리고 용서하지 말자 광기(狂氣)의 시대를!
잊지 말자 그리고 용서하지 말자 광기(狂氣)의 시대를!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15.11.26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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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一筆

김영삼이 차남 현철의 국회 입성을 간절히 원했던 것은 자신의 명예회복 때문이다. 취임 초기 90%가 넘는 지지율이 퇴임전후엔 1%대로 떨어진 것에 대한 상실감은 당사자가 아니고선 절대로 실감하지 못한다.

어쨌든 그는 죽고 나서야 비로소 학실히(?) 명예회복을 하게 됐다. 정치역정의 공과를 떠나 그를 민주화의 영웅으로 다시 자리매김시키고 있는 작금의 여론은 사실에 입각하더라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서슬퍼런 독재에서 김영삼 만큼 목숨을 걸고 정면으로 맞선 정치인은 없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로 상징되는 그의 원색적인 어록(語錄)은 그래서 더욱 실감나고 격동적이다.

정치적 지도자들에 대한 사후접근은 대개 두가지로 나뉜다. 재평가와 신원(伸寃)이다.

전자는 잘못 기록되거나 인식된 것에 대한 일종의 수정행위로서 당사자의 입장에선 기존의 이미지에 더 좋은 덧칠을 할 수도 있고 반대로 더 추락할 수도 있다. 신원은 말 그대로 사후에라도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으로 우리나라 동학운동과 천주교의 교조신원운동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역사적 인물들이 요즘처럼 한꺼번에 재평가를 받은 적도 없다.

김영삼은 죽음으로써 이승만은 건국 70년에 맞춰 정주영은 탄생 100주년으로 최근 국가적 재평가의 대상이 됐다. 분명한 사실은 어느 나라든 이같은 재평가가 이루어진 시점은 대개 혼란기였다는 것이다.

사후 재평가의 모델로는 역시 모택동이 으뜸이다. 그는 중국의 고비마다 재평가라는 도마 위에 올려졌고 그 핵심은 1966년부터 10년간 대륙을 휩쓴 문화대혁명이다. 최고로 신격화됐던 모택동이지만 죽은 후엔 국가혼란과 경제난이 빌미가 돼 종종 나라에 망조를 안긴 원흉으로 추락했다. 대륙에 시장경제의 불씨가 당겨지고부터는 문화대혁명은 실패한 극좌 사회주의운동으로까지 매도됐다.

최근 그가 다시 부활하고 있다. 중국 전역에 자본주의적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빈부격차가 이젠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지자 문화대혁명에 대한 향수가 급속히 커진다고 한다.

하지만 문화대혁명은 역사의 심판을 받은지 오래다. 나라를 개조하겠다는 당초 취지가 사람들을 죽이고 문화를 파괴하는 야만의 광기(狂氣)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이 나라의 특성상 여전히 그 피해 규모가 정확히 드러나지 않지만 지식인 등 수백, 수천만명이 죽임을 당했다는 얘기이고 보면 문화대혁명이 나라 자체를 물말아먹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중국 당국도 “건국이래 가장 중요한 좌절이었다”고 정리한 바 있다.

그런데 사후 인물에 대한 또 다른 접근방식인 ‘신원(伸寃)’이 엊그제 우리나라에서 있었다.

이른바 참여정부의 매국노 논란으로 비화됐던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폐기 공모혐의가 지난 24일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판결을 받은 것이다. 이로써 억울하게 누명을 썼던 노무현은 이제서야 영면하게 됐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2012년 10월 8일,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노무현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서해북방한계선(NLL) 포기를 약속했다”는 새누리당 정문헌의 폭로로 시작된 광기(狂氣)는 끝내 전임 대통령에 대한 현대판 부관참시로 이어졌다.

‘노무현이 나라를 팔아먹었다’며 그 광기의 대열에 앞장섰던 사람들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정문헌 김무성 서상기 권영세 윤상현 남재준 등 등 말이다.

가장 극성이었던 윤상현은 나중에 “정상회담 회의록에 NLL 포기발언은 없었다”고 실토했지만 어쨌든 이 사안은 박근혜 정권 탄생의 1등공신이 됐다.

모택동에게 문화대혁명, 아니 광기를 결심케 한 결정적 계기는 엉뚱하게도 1961년 첫 공연부터 대박을 친 ‘해서파관(海瑞罷官)’이라는 희극이다. 명나라 청백리였던 해서는 이 극에서 주인공으로 인용돼 이렇게 읊조린다. “당신은 너무 독선적입니다. 당신은 지나친 편견을 가지고 있어요. 당신은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고 비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온 나라 사람들이 당신에게 불만을 품은지 이미 오래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정국과 비교돼 참으로 모골이 송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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