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배 시인의 문학 칼럼
박화배 시인의 문학 칼럼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1.24 09: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길도 가는 길(고산의 문학과 미학적 삶의 터전 보길도 소묘)
이 세연정의 넓이는 5000 평방미터에 달하며 원래 본집은 사슴을 키우는 미산의 낙서재에 있었다고 한다. 그는 귀빈이 오거나 마음이 울적할 때면 이 세연정에 내려와 마음을 달래기도 하고 또 그가 어부지리사(漁父四時詞) 중 가을노래에서

'기러기 떳는 밖에 못보던 뫼 뵈는고야.

이어라 이어라

낚시질도 하려니와 취한 것이 흥이어라.

至菊총 至菊총 於思臥

석양에 비취니 천산에 금수로다ㅉ

중략…'

라고 읊었던 대로 바다로 나가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며 낚시질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세연정은 고산 윤선도가 시심을 가다듬고 풍류를 즐겼던 곳이기도 하지만 본래의 목적은 사교를 위한 연회장이었다고 한다. 당시 변방의 작은 섬에 은거하여 유유자적하는 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윤선도가 언제 임금의 부름을 받아 영전되어 한양으로 가게 될지 몰랐기 때문에 해남을 비롯한 남도지역의 지방수령들과 유지 문사들이 이 위대한 은자의 눈에 띄기 위하여 잦은 방문을 했던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이렇게 찾아온 방문객은 세연정에서 접대되었을 것이고 특히 한양의 조정에서 관리들이 내려오면 의례히 세연정에서 기녀를 불러놓고 호화스런 접대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서인이 집권하고 있는 정치상황에서 소외세력이었던 남인에 속해 있는 윤선도는 그의 야심과는 달리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가 불가능하였으리라 생각된다.

날은 저물어 이제는 더 이상 유적지를 돌아다닐 수가 없어서 숙소를 정했지만 왼종일 윤 고산을 만나본 것이 흥분이 되었는지 잠은 오지 않고 해서 강종철씨와 같이 어릴 때부터 윤 고산의 유적을 조사도 해보고 전라남도 지방문화재로 지정되도록 애를 썼다는 주인집 어른과 보길도에 관해서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은자의 섬 보길도 밤은 깊어만 갔다.

얘기를 하다보니 과연 보길도는 아름답고 좋은 섬이었다. 산이 높은 보길도는 바다 가운데에 있지만 지기(志氣)와 청숙(淸叔)하여 한 번 부용동에 들면 이 산 밖에 바다가 있는 줄을 모른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비구름이 한 달 내내 덮고 있는 장마 때에도 주초(柱礎)사이에는 습한 기운이 없고 산속에는 사슴 산돼지 노루 토끼 등 순한 짐승이 살며 632종이나 되는 식물이 살고 있고 그 섬을 대표할 수 있는 식물로 생달나무와 동백나무 풍란 외에도 다수의 난(蘭)들이 자라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죽순 고사리 버섯 등 산과 들에서 나는 진미와 태화 전복 조개 각종 어류 등 맛은 철따라 다르지만 이른바 산해진수를 모두 갖추고 있다고 한다. 보길도는 이처럼 빼어난 경관과 품고 있는 물산이 풍부하여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산새와 들짐승의 우는 소리와 멀리서 아득히 들리는 파도소리를 벗 삼아 나무그늘이나 수풀 밑에서 여유로운 오수를 즐기며 아름다운 산과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평화롭게 사는 그러한 곳이었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나는 주위의 풍치와 윤고산의 유적과 그의 문학과 미학적 삶의 조화로운 정신세계에 홀린 듯 몽환적 꿈의 터널을 통과해서 깊은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