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유명사찰의 문화재관람료 시비가 이젠 단순 갈등차원을 넘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무법천지의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사찰을 찾지 않는 국립공원 탐방객에게까지 일괄 징수하는 문화재 관람료를 대법원조차 불법으로 판시했지만 막상 현장에선 원시사회를 방불케 하는 일들이 대책 없이 벌어진다.

지난 5월 이시종 지사의 문화재관람료 폐지 내지 징수장소 이전 언급이 사찰측의 반발로 흐지부지된 법주사는 주말만 되면 관람료를 둘러싼 잡음이 여전히 끊이지 않는다. 속리산 인근 상인들은 당시 이 지사가 문제해결에 의욕을 내비치는가 싶더니 돌연 사찰측에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고 명분 없이 발을 빼는 바람에 자신들만 더 위축되게 됐다고 푸념한다.

단풍이 절정을 이룬 지난 주말, 지리산 천은사 입구에서 빚어진 추태는 정부가 관람료 폐지문제를 더 이상 방치했다간 국민정서에 국가적 재앙을 안길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이곳 천은사 옆을 지나는 861번 지방도는 지리산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간선 도로로 이날 천은사측은 지리산 탐방은 고사하고 단순히 차량을 운행해 전남 구례 쪽에서 전북 남원 쪽으로 이동하려는 사람에까지 관람료를 받는 바람에 번번이 충돌을 빚었다.

성격이 고분고분하거나 모처럼의 휴일 나들이를 망치기 싫은 운전자들은 선뜻 1인당 1600원의 돈을 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이에 항의하며 욕설까지 주고받았다. 돈을 안 내고 통과하는 차량에 대해 징수원들은 험악한 표정으로 수십만원의 과태료 운운하며 협박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곳이 사찰소유의 땅이기 때문에 통행료라도 내라며 윽박지르는 모습도 보였다.

2007년 정부의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와 함께 2년 전 대법원의 부당행위 판결로 법적 근거를 잃은 전국의 유명사찰들은 관람료 징수가 점차 어려워지자 최근엔 인상이 우락부락한 징수원을 고용해 위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문화재관람료 명칭을 ‘문화재구역 입장료’라고 기묘하게 바꿔 대응하는 사찰도 있다. 그러면서 탐방객인 상대가 덩치가 크거나 성깔 있으면 못 이기는 척하고 물러나지만 선량한 사람들에겐 갑질을 해대며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것이다. 이를 두고 피해자들은 ‘양아치질’이라고 분개한다.

사찰들의 이런 부당행위에 대해선 종교계 내부에서조차 “정부가 헌법의 정교분리 원칙을 무시하고 있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최근엔 강원 설악산과 경북 청송의 주왕산 국립공원 인근 상인들이 주민궐기대회와 성토대회를 열어 관람료 징수에 대한 대책을 주문하고 나섰다.

현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불교계의 집단반발을 우려해 이 문제에 극도로 소극적이다. 하지만 상황이 점점 더 꼬여가면서 불교 신도들조차도 교계 정화를 위해 더 이상 이 문제를 방치할 수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불교계의 반발이 아니라 특정 사찰들의 기득권 수호와 이권다툼일 뿐이고 이 때문에 애먼 국민의 주머니만 털린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 비정상을 알고나 있는 거여. 내가 당장 얘기하겠어!” 지난 18일 지리산 천은사 매표소에서 느닷없이 이 말을 내던진 한 탐방객은 “나를 고소하면 될 거 아니냐”고 흥분하면서 끝내 3000원의 입장료(2인 기준)를 내지 않고 통과했다.

이렇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찰관람만 안 하면….
 

충청타임즈 기자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