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곳간만 넘치는 나라
재벌 곳간만 넘치는 나라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5.09.13 1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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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보은·옥천·영동>

가계빚에 이어 나랏빚이 도마에 올랐다. 우리나라 채무가 내년에 645조원을 돌파해 국내총생산(GDP)의 40%를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사상 최대 규모’라는 수치가 문제가 아니다. 빚이 늘어나는 속도가 심상찮다. 2000년만 해도 국가 부채는 111조원 정도였다. 불과 16년 만에 6배 가까이 늘어났다는 얘기다. OECD 회원국의 평균 국가채무비율보다 양호하다지만 이 속도대로라면 언제 국가경제를 궁지로 몰아넣을 악재가 될지 모른다. 이미 폭탄이 돼버린 가계부채 문제까지 오버랩시키면 불안감이 더 커진다. 가계부채는 지난 6월말 1130조원을 돌파했다. 지난해말 1085조원에서 반 년만에 45조원 늘어났다. 기업과 자영업자들의 부채도 증가일로이다. 지난해말 기준으로 정부와 기업, 가계가 진 부채를 총합하면 4781조원에 달한다. 공기업 등 공공부문을 망라한 정부 부채가 1127조원이다. 기업이 2332조원의 빚을 지고있고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236조원에 달하는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다. 가계부채를 포함하면 GDP를 훌쩍 넘어선다. 

그런데 경제에 참여하는 주체들이 모두 부채에 시달리는 형국을 강건너 불 보듯하며 유유자적하는 분야가 있다. 재벌들이다. 30대 대기업의 올해 1분기 말 기준 사내유보금이 710조3000억원이라고 한다. 1년새 38조원이 늘었다. 사내유보금은 기업이 벌어들인 수익에서 배당이나 재투자를 하지 않고 회사에 남겨둔 여윳돈을 말한다. 

10대 재벌로 좁히면 사내유보금이 504조원에 달한다. 재벌의 과도한 사내유보금이 서민경제와 대비되며 구설에 오른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지난해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기업의 과도한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부과하겠다며 칼을 빼든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이익을 많이 올리고도 투자·배당·임금 등에 인색한 기업에는 법인세를 추가 징수하고 사내유보금을 배당이나 임금으로 적극 전용하는 기업에는 인세티브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효과를 거뒀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30대 재벌의 사내 유보금이 40조원 가까이 늘어났다. 정부의 시책과 의지가 전시용에 불과했거나 재벌의 귓전도 울리지못한 엄포에 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이 내놓은 각국 경제상황 분석보고서는 거듭 우리 사회에 경보를 울리고 있다. 112개국을 소득 수준에 따라 4개 그룹으로 나눠 추진한 이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1인당 소득이 1만7000달러를 넘는 상위 30개국의 1그룹에 포함됐다. 기본적인 소득 형평성 조사에서도 한국은 경제선진국들이 모인 이 그룹에서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소득을 총체적이고 단선적으로 분석한 여기까지만 선진국일 뿐이었다.

복지와 세금 등 소득의 재분배 과정을 감안해 산정한 실질적 소득 형평성에서는 1그룹에서 3그룹으로 떨어졌고, 3그룹에서도 최하위인 18위에 그쳤다. 중간소득에 미달하는 가구의 비율을 따진 빈곤율에서는 최하위로 추락했다. 보고서는 ‘한국은 기득권층이 경제 이익을 독점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경제 선진국을 자처하는 우리의 허울을 벗겨낸 보고서다. 국민과 정부의 곳간은 바닥을 드러냈지만 대기업 곳간은 넘쳐나는 현실은 그 기득권층의 꼭대기를 누가 차지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사정이 이런데도 대기업은 법인세 인상이나 사내유보금 얘기만 나오면 손사레를 친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기업의 매출과 이익은 늘었지만 납부한 세금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은 MB정부가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내리고, 조세감면을 대폭 확대하며 기업에 은총을 베풀었던 해이다. 이 조치후 지금까지 줄어든 법인세가 52조원으로 추산된다. 혜택은 주로 대기업이 차지했다. 대기업이 누린 감세액이 38조원으로 74%에 달했다. 세액공제 등 각종 감면 혜택도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의 몫이었다. 

대기업 곳간을 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지만 벼랑으로 치닫는 현실은 차선 아니면 차차선이라도 동원해야 한다는 절박한 처방전을 받아든 상태다. 누가 의사 역을 해야 할지는 몰라도 누군가 메스를 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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