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추적 구명조끼
위치추적 구명조끼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5.09.07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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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국장<천안>

5일 밤 추자도의 남서쪽 해상, 칠흑 같은 어둠 속의 바다 한가운데. 뒤집힌 배의 모서리를 붙잡고 밧줄로 서로 몸을 얽어매어 의지한 십수 명의 승객들. 곧 구조대가 올 거라는 희망에 서로 믿고 의지하며 기다린 지 1시간 후. 

구조선과 함께 링스헬기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서치라이트를 켠 채 접근한다. 곧바로 해난구조대(SSU)와 해군특수전전단(UDT/SEAL) 대원들이 헬기와 구명정에서 뛰어내려 승객들을 구조하기 시작. 사건 발생 70분 만에 상황 끝. 배에 매달려 공포에 떨었던 승객들은 단 한 명의 실종자도 없이 모두 연안 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는다. 

18명의 사망·실종자를 낸 추자도 해상의 낚싯배, 돌고래호의 전복 사고. 정상적인 시나리오였더라면 이렇게 돼야 하지 않았을까. 

세월호 참사로 탄생한 국민안전처는 연초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육상에서는 30분 이내, 해상에서는 1시간 이내에 특수구조대가 재난현장에 도착할 수 있는 재난 대응 시스템을 갖추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말은 지켜지지 않았다. 승객 21명을 태운 배가 뒤집혀 풍랑 속에서 떠내려가고 있을 때 구조대는 사고 발생 후 1시간30분 이후에 출동해 엉뚱한 곳에서 허둥대고 있었다.

부실한 초동대응과 안전 불감증이 재난을 키웠다. 1시간이나 뒤늦게 사고 신고를 한 돌고래1호 선장. 신고를 받은 후, 어선위치발신장치(V-Pass)가 꺼져 있는데도 일일이 승선자들에게 전화를 하느라 23분을 허비한 해경. 사고 선박 V-Pass의 작동 여부를 아예 모니터링 하지 않은 관제센터. 표류 예측 시스템만 믿고 11시간을 밤이 새도록 엉뚱한 곳에서 헤맨 구조·수색대. 세월호의 판박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무엇보다 아쉬운 건 지휘본부의 오판이다. 뒤늦게 출동했지만 그래도 골든타임이 상당 시간 남아있었다. 

그러나 표류 예측 시스템을 맹신하면서 엉뚱한 곳에서 시간을 낭비했다.

그리 먼 곳도 아니었다. 6일 오전 6시께 발견된 돌고래호는 수색대가 있던 곳과 불과 4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지휘본부는 국립해양조사원이 개발한 표류예측 시스템을 믿었다. 조류 방향과 유속을 근거로 선박과 실종자의 위치를 찾는 시스템인데 2011년 도입했다. 

그러나 이번 참사에서 보듯 안 하니만 못했다. 종전에는 사고지점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듯 확장해 실종자를 찾는 방식으로 수색이 전개됐었다. 차라리 이 방식이었다면 최소 5~6시간의 골든타임을 확보해, 배에서 너울에 휩쓸린 3~4명을 더 구할 수도 있었다. 

정부가 부산에서 2012년 U(유비쿼터스)-기반 해양 안전관리 사업을 착수한 적이 있다. 당시 국비 10억 원을 들여 1000개 어선에 자동위치 발신기가 부착된 구명조끼를 보급했다. 2014년엔 제주지역에 확대했다. 

해상 조난을 당한 사람이 조끼에 장착된 버튼을 누르면 반경 10km이내 선박에 구조 신호를 보낼 수 있다. 주로 돈이 없어 위치발신장치를 장착할 수 없었던 5톤 미만 영세 어부들에게 지급됐는데 연간 3만 원의 전파 사용료 부담을 정부와 지자체, 수협이 서로 미루면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만약에 이 구명조끼가 돌고래호 안에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우리 국가재난안전망 구축사업은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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