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선생님
엄마선생님
  • 이수안 <수필가>
  • 승인 2015.09.06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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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 이수안 <수필가>

어린이집 버스가 포도밭 안으로 들어온다. 노란 버스에서는 노란 옷을 입은 아기들이 재잘거리며 하나하나 내린다. 어미 닭의 품에서 삐악삐악 병아리가 종종종 걸어 나오는 것 같은 착각이 인다.

안전수칙을 들은 아기들은 한 반씩 밭으로 들어가 포도를 직접 따 먹는 경험을 한다. 안전을 위해 가위는 쓰지 않고 나무에 달린 포도를 제 손으로 직접 따 먹어보는 것이다.

이때 선생님들은 신경쓸 일이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안전에 유의해야 하며 포도를 따 먹을 때 가장 좋은 장면을 놓치지 않고 사진으로 남겨야 한다.

더 좋은 장면을 건지기 위해 포도를 따는 시선, 손길 등을 수정 지시하며 칭찬을 곁들인다. 달콤한 포도를 나무에서 직접 따 먹는 것도 즐거운 일인데 칭찬까지 들으니 아기들 얼굴에는 웃음이 만발한다.

포도밭 안에서의 행사가 끝나자 느티나무 아래 야외무대와 원두막으로 자리를 옮겨 편하게 앉아 포도를 먹는다. 왁자하도록 조잘대던 아기들도 포도를 먹느라 잠잠해졌다. 카메라를 든 선생님은 아기들이 맛있게 먹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여전히 바쁘다.

아기들이 포도원에 머물고 간 시간은 약 두 시간 정도다. 노란 버스가 떠난 뒤 딸도 나도 휴~ 하고 긴 한숨을 쉬며 앉는다. 행여 한 아기라도 다칠까봐 팽팽했던 긴장감이 일순간에 느슨해진 것이다.

체험 행사가 끝나고 잠시 숨 돌릴 때면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노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잠시라도 한눈팔면 사고가 날 수도 있는 아기를 보살피는 일이다. 몸이 고단한 것보다 한순간도 아기의 안전을 망각할 수 없는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는 부담이 더 크지 않을까.

더구나 연초에는 어린이집 아기 학대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 했었다. 우리 집도 그때는 서연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도 될지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심심해하는 아기를 집에서는 다 만족시켜 줄 수 없었다. 불안한 심정으로 보냈는데 이후 괜한 염려였음을 확신했다.

제 어미는 어린이집에서의 모습이 깨알같이 적힌 알림장을 보고 아이의 낮 생활을 짐작한다. 다음날 선생님은 가정에서의 생활을 빼곡히 적은 알림장을 보고 집에서의 생활을 짐작한다. 이렇게 가정과 어린이집이 알림장을 통해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깊이 고민하고 의논도 하는 것이다.

알림장을 통해서 알게 된 일인데 어린이집에서는 상상 이상의 섬세함으로 아기를 보살핀다. 물론 어린이집 아기 학대 사건이 가끔 일어나지만 그건 극소수의 이야기인 것 같다.

교육철학이 없는 일부 교사의 잘못된 행태가 드러날 때마다 사랑으로 아기를 보살피는 선생님들까지도 공연히 주눅들게 되지 않을까 싶다.

미운 일곱살이라는 말은 옛말이다. 자아를 깨닫는 세 살만 되어도 아기는 왕성한 호기심으로 여러 가지를 시험한다. 저 혼자서 하겠다고 우기거나 싫다며 도리질하고 떼도 쓴다.

한 인간의 인격이 형성되는 가장 중요한 시기의 아기를 절반은 키우다시피 하는 어린이집 선생님들. 어린이집에서의 일상을 종알종알 이야기하는 서연이에 따르면 아기들은 선생님을 엄마선생님이라고 부른단다. 신뢰, 보수, 등의 뒷받침이 잘 되어야 신명나게 일하고 그 중책을 잘 수행할 수 있을 텐데.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기들 단속하느라 두 시간내내 바짝 긴장했을 엄마선생님들. 힘에 부쳐 발갛게 상기된 얼굴이 자꾸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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