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벌어지는 세습 논란.
툭하면 벌어지는 세습 논란.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5.08.30 1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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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보은·옥천·영동>

새삼 ‘세습’이 화두가 되고있다. 과연 우리 사회가 진보 내지는 진화하고 있는지 다시금 자문하게 된다. 부의 세습은 관습으로 굳어진지 오래다. 이번 롯데그룹 사태에서 봤듯이 대물림의 방식이 더욱 몰상식하고 파렴치해져갈 뿐이다. 아무리 아둔한 2·3세에게 물려줘도 부의 기반이 흔들리지 않는 난공불락의 철옹성을 쌓고 만세를 이어갈 작정일 터이다. 막강한 대기업 노조들은 고용 세습을 누린다. 지난해 대한민국 청년들이 선호하는 100대 기업의 노사간 단체협상을 분석한 결과 11개 기업이 ‘고용세습’ 조항을 둔 것으로 드러났다. 조합원과 장기 근속자, 정년퇴직자 자녀의 우선 채용을 아예 룰로 만든 것이다. 방송계도 세습 논란에 연루됐다. 연예인 부모들이 자식을 대동하고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범람을 두고 나온 말이다. 그렇찮아도 몇몇 익숙한 얼굴들이 각종 채널을 옮겨다니며 브라운관을 종횡무진해 독과점 혐의를 받아온 곳이다. 단 한번도 자신의 재능과 역량을 알릴 수 있는 출연 기회를 잡지못하고 고군분투하다 꿈을 접는 방송 지망생들이 숱하다. 

최근에는 로스쿨이 세습의 통로가 되고있다는 비판을 사고있다.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 자격증을 딴 여당 중진의원 아들이 정부법무공단에 채용되는 과정에서 특혜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이런 잡음은 이번 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에도 로스쿨을 나온 전 감사원 사무총장과 현직 국장, 전 여당 국회의원의 아들이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감사원 변호사로 채용돼 대물림 의혹을 빚었다. 로스쿨이 변호사를 배출하기 시작한 후 한 해 평균 사법시험은 9명, 로스쿨은 23명의 법조인 자녀를 배출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와있다. 법조인 자녀들이 사법시험보다 로스쿨에서 강세를 보인다는 통계는 석연찮은 뒤끝을 남긴다. 

로스쿨 도입 시 문제가 됐던 것은 비싼 학비였다. 생활비와 교재비까지 보태면 3년간 1억원 이상이 들어간다는 것이 정설이다. 대학생 5명중 1명꼴로 학자금 때문에 빚을 지고있고, 이 가운데 7만여명은 저축은행과 대부업체 등에서 평균 28%대의 고리 대출을 받고있는 것이 현실이다. 자녀 대학 졸업시키기도 벅찬 서민층에 추가로 1억원 이상을 더 들여야하는 로스쿨은 기회가 아니라 장벽일 수밖에 없다. 하물며 졸업하고 변호사 자격증을 따도 부모의 빽이 취업을 좌우하는 두번째 장벽을 만나야 한다면 서민들에게는 오르지 못할 나무를 넘어 ‘올라가서는 안될 나무’에 다름아니다.

로스쿨이 툭하면 도마에 오르는 가장 큰 이유는 변호사 시험 합격자 성적과 순위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다. 합격자들이 채용 과정에서 성적외에 다양한 부분을 평가받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취지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렇더라고 법조인으로서 기본 역량을 검증한 시험성적이 가장 큰 평가요인이 돼야한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은 한해 1500여명이나 배출된다. 상위권과 바닥권의 실력 차가 클 수밖에 없다. 성적 미공개는 이 차이를 무시하겠다는 것이다. 턱걸이 합격한 실력 미달의 변호사들이 부모의 배경에 힘입어 공공기관에 취업하는 또 다른 유형의 혈세 낭비를 막을 수 없도록 한 잘못된 룰이다. 반면 사법시험이 공정성 시비를 받지않는 것은 합격자 석차를 낱낱이 공개하고 그 순위에 따라 판검사를 임용하는 등 투명성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현재 상황에서는 로스쿨이 다양한 계층의 법조인을 배출하겠다는 설립 취지는 물론 공정성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변호사 시험 합격자 성적과 순위를 공개하고 이들을 고용하는 공공기관도 채용기준을 낱낱이 밝혀 ‘음서제’ 시비를 줄여야 한다. 사법시험을 유지시키는 것은 당연하다. 여론도 일관되게 사시 존치에 공감하고 있다. 돈있고 빽있는 사람들은 로스쿨로 가고, 이도저도 없는 사람들은 사법시험을 선택토록 하자는 우스꽝스러운 주장이 지지를 받는 사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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