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도서관
비오는 날의 도서관
  • 김영희 <청주시 상당도서관 팀장>
  • 승인 2015.08.30 18: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서관 담론(談論)
▲ 김영희 <청주시 상당도서관 팀장>

상당도서관의 동쪽 창에는 늘 한 폭의 풍경화가 걸린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복닥대며 살았을 지금은 시간이 멈춰진 동네 수동과 사연을 아는 듯 모르는 듯 그 동네를 감싸 안은 와우산(우암산)이 무심하게 걸려있다. 오늘은 수채화가 걸렸다.

나는 이따금씩 창밖을 내다보곤 한다. 태풍이 일본 규슈지역을 뒤집어 놓고 있다고 하던데 지금 창밖은 차분차분 비만 내린다. 학교에서 일찍 끝난 학생들이 우산 속에서 재깔재깔 떠들며 총총히 몰려왔다 몰려간다.



문득 유치환님의 시 ‘행복’이 떠오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참으로 편지를 써본지가 오래되었다.

속도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은 편지보다 메일을 주고받는다. 아니지. 메일은 업무적으로나 쓰고 내 속사정은 메시지를 주고받는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다. 늘 손에 달고 사는 폰 덕분에 모든 것이 편해졌다. 

아무런 선행 작업없이도 앉은 자리에서 전화도 하고 뉴스도 보고 채팅에 게임까지 하느라 시간가는 줄 모른다. 울고 떼쓰는 아이에게도 스마트 폰이라면 옛날의 곶감 대신이다. 스마트폰이 손에 없거나 밧데리가 조금 남으면 불안해하는 증후군까지 생겼으니 나와 스마트폰을 구분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집에서는 물론이요 친구와 마주 앉아서도 스마트폰 세상과 소통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본다. 그 안에 실시간 뉴스와 SNS 소식에 누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뭘 먹고 있는지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간다. 짬짬이 댓글도 달아준다. 스마트 폰과 마주하고 있는 순간 세상은 돌아가는 듯 멈춰있다. 그 순간은 내 손바닥에 손오공을 올려놓은 듯하다. 삐익~삑~울리는 밧데리 경고음에 간신히 스마트폰에서 빠져 나온다.

이렇게 한 몸이 되어 버린 스마트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 가족과의, 친한 사람들과의 대화가 없어지지 않았는가. 대화보다는 그때그때 메시지로 소통을 하고 있다. 

속도감은 맘에 든다. 그러나 단문의 메시지에서 행간을 읽어내기는 어렵다. 한눈에 보이는 것이 다 인 단문은 다시 곱씹어 읽어볼 필요도 생각할 필요도 없다. 

소통은 됬으??뭔가 허전하지 않은가? 꽉 찬듯하지만 공허하지 않은가 말이다. 이럴 때 도서관이 답이다.

적당한 소음이 낀 도서관에 앉아 책을 읽는 것이다. 책을 읽다가 창밖 풍경 한번 바라보기도 하고 빈 허공을 바라보며 여러 가지 생각에도 잠겨보기도 한다.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이 -용두사미로 끝난 올해의 계획들, 실현되지 못한 누군가와의 약속들, 기대와 상상과는 다른 현실들- 마구마구 허공을 떠다닌다. 

책을 매개로 떠오른 자랑스러울 수도 후회스러울 수도 있는 나의 생각 나의 이야기를 편지에 적어 보자. 

부치지 못한 편지가 될지라도 해보는 거다. 나를 찬찬히 바라보고 생각해보면 여유롭고 꽉 찬 충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은 스마트폰을 하는 것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나니, 다가오는 가을이여, 안녕?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