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기다리며
가을을 기다리며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5.08.3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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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 이효순 <수필가>

8월도 어느덧 끝자락에 매달려 가을을 바라본다. 성급한 하늘은 조금씩 높아지고 아침저녁 부는 바람도 가을을 안고 있다. 집 앞뜰의 작은 숲에선 가을벌레들이 저녁이면 하모니를 이룬다. 너무 빠르게 지나는 시간 속에 쫓기며 사는 것 같다.

옥상에서 자라는 바위솔도 어느덧 월동준비를 서서히 하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고추 포기도 다시 잔가지를 뻗어 꽃을 많이 준비한다. 마치 생을 마감하기 전의 작은 몸부림 같다. 

울타리 콩은 여름내 잎만 무성하더니 이제 제철을 만난 듯 꽃을 많이 피우고 꽃 진 자리에 콩 꼬투리도 맺는다. 그런 모습을 보며 대문을 드나들 때 바라보는 것도 흐뭇하다. 풍성해지는 가을처럼 마음도 넉넉해진다.

작은 뜰엔 가을꽃이 봉오릴 맺기 시작한다. 구절초, 감국, 꽃향유. 국화, 미역취, 산파…. 다른 꽃 필 때 부러운 눈으로 목을 길게 빼고 바라보다가 이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봄, 그 뜨거웠던 여름, 모두 보내고 가을의 초입에 서 있다. 오랫동안 참고 기다리는 무던한 사람의 모습을 많이 닮았다. 

자연은 늘 사람에게 인내와 겸손을 배우게 한다. 사람 같으면 늦는다 생각할 때 끼어들기와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을 드러내고 만다. 그러나 자연은 말없이 그 자리에서 시간의 지남에 따라 순응하며 자신을 세워간다. 언뜻 보면 그렇게 있으면 뒤처지고 무시당한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자연은 신의 섭리에 따라 순종할 따름이다.

아침 하늘에 높이 뜬 구름을 바라본다. 여름에 안 보이던 새털구름이다. 새털구름이 하늘에 높이 뜨면 가을이 오고 있음을 눈으로 먼저 본다. 아직도 맘이 설렌다. 올가을에는 또 어떤 일들이 나를 기다리며 다가올까. 구절초 꽃을 따서 구절초 차를 만들까. 섬감국 꽃을 말려 베갯속에 넣을까. 오랫동안 소식 전하지 못한 친구들에게 가을 편지를 쓸까. 아니면 내년 봄을 위해 알뿌리 꽃을 심을까. 마음의 양식을 위해 책을 읽을까. 보고 싶은 사람을 찾아 여행을 떠날까. 꽃이 진 화분들의 분갈이를 할까.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이 있지만 간절히 다가오는 것은 먼 곳에 사는 보고 싶은 아이들이다. 가끔 아이폰을 통해 얼굴을 보며 목소리를 듣지만 왠지 허전하다. 따뜻한 손으로 전해지는 온기가 그리울 따름이다. 이미 다 커버려 한 가정을 이룬 가장들이지만 마음에 남은 것은 늘 어린 시절 정겨운 모습뿐이다.

가을이 오면 우선 이국에 사는 아이들 있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 사는 모습을 보러 가는 것이지만 집을 떠나니 여행이라고 하고 싶다. 잠시라도 함께 웃으며 그동안 사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리고 귀여운 손녀들의 맑은 눈을 보며 웃음을 나누고 싶다. 이른 봄에 떠난 손녀들 이제 많이 자랐을 텐데.

그다음으로는 등록한 평생교육원에서 새로 만나는 지인들과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더불어 마음을 공유하고 싶다. 주변부터 천천히 하고 싶은 것을 해 나가리라. 

계절 가운데 가을을 좋아하는 것은 화려함 속에 쓸쓸함과 풍성함이 있기 때문은 아닐는지. 풋풋했던 젊은 시절처럼 올가을을 기다리는 마음은 유난히 더 설레고 새 힘이 솟는다. 마음 다 비우고 그곳에 파란 하늘을 가득 담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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