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이 ㄴ 왔다 ㅎ 니
경전이 ㄴ 왔다 ㅎ 니
  • 윤승범 <시인>
  • 승인 2015.08.0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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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오래된 무덤에서 오래된 경전이 너덜너덜하게 발견되었습니다. 이제는 망해서 흔적이 없던 고대국의 역사 몇 가지만 발췌를 합니다.

그 나라에서는 한 개인이 사사로이 알고 있는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도 알리는 것은 지고지순의 불경(不敬)이기에 알아서도 안 되고 알려고 해서도 안 되고 더욱이 의혹을 품거나 섣불리 세치의 혓바닥을 놀려서도 안 되었다고 합니다. 통제된 것 이외의 것을 나불거리는 것들은 지옥에서 파견된 붉은 사탄이거나 사탄의 끄트머리거나 또는 사탄의 사주를 받은 것들이니 만 백성은 그저 ‘먹방’이나 보면서 냉장고에 남아 있는 재료들을 털어서 맛난 음식이나 해먹고 태평성대를 구가하랬답니다. 그래서 다들 그렇게 하고 살았답니다.

오로지 내 입에 들어가는 것과 들어 갈 것과 들어가지 않을 것에만 신경을 쓰고 그 이외의 것은 내 것이 아니니 눈 감고 귀 닫고 입 다물어 삼삼은 구년을 보내면 그 집구석이 대대로 잘 될 것이며 집구석의 잘 됨이 사회의 번영을 일깨울 것이요 사회의 번영이 곧 국가의 번영과 맞닿을 것이니 믿고 따르라 했답니다.

사실여부를 떠나 경전에 쓰여진 그것은 곧 진리이기 때문에 무조건 믿어야 하며 믿지 않는 자는 번개탄에 맞아 불지옥에 떨어질 것이라 하였으니 그들은 그 번개탄의 화력을 두려워하며 하루하루를 만족하게 여기며 살아갔답니다. 모든 문제는 전능하신 그 분이 해주시며 그들은 오직 제 때 바쳐야 할 세금과 벌금과 납세의 의무를 충실히 지키면 그 이외의 것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본인에게 있으며 삶과 죽음에 대한 것 또한 전적으로 본인의 책무에 한한 것으로 여기면 되는 것이었답니다.

의무는 있으되 권리는 없으며 권리에 대한 보장은 경전에 적혀있되 지키지 않아도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으며 이의를 제기한다 한들 들어주거나 할 사람도 없음으로 하여 그들은 만세 대대로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었답니다. 약소국인 그 나라가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강대국에 강하고 약대국에 비굴하며 그러한 사실 또한 알리지 않았음으로 하여 그런 사실은 애초부터 없는 사실로 치부되었고 그렇게 없는 사실의 있음으로 하여 그들은 오랜 세월 행복을 누리며 살았답니다.

경전에 기록된 바 그들의 멸망은 기록되지 않았으며 기록되지 않은 이유는 멸망의 단초를 쥔 자들은 더 이상 그나라 국민이 아니었기에 나라의 멸망은 그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이었고 얼굴이 누런 그들은 얼굴이 하얀 나라 또는 얼굴이 누런 나라로 이주하여 그들의 성과 이름을 빌려 살았으며 아직까지도 그 후손이 존재한다고 하지만 그 사실 여부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직 무덤에서 발굴된 낡은 경전만 하나 전설처럼 전해져 온다는 그런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있기에 여기에 이렇게 옮겨 적습니다.

옮겨 적기는 하였으되 이런 것을 굳이 적을 필요가 있기는 한가 싶기도 하고 적어서 무엇하나 싶기도 한 그런 마음이 올시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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