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붐세대들의 자화상
베이붐세대들의 자화상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5.07.05 1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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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연지민 취재3팀장 <부장>

“요즘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 건가 생각해 봤어요. 생각나는 대로 사는 것인지,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인지 정말 모르겠어요.”

쉰 중반을 넘어선 그가 어렵게 입을 뗐습니다. 

“어려운 시기도 지나고 돈도 이젠 잘 버는데 기쁜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습니다. 하루하루가 의미 없이 느껴집니다.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평소 과묵하고 배려심 많은 그가 꺼낸 말은 뜻밖이었습니다. 장남이라고는 하지만 부모 부양의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렵게 시작해 2년간 고생한 사업이 이젠 자리 잡고 있었기에 무심결에 털어놓은 그의 속내가 충격이었습니다. 

이따금 만날 때마다 허허실실 호탕하게 웃던 그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잘 지내고 있겠지 하고 마음으로 믿고 의지해오던 그가 아니었습니다. 덤덤하게 말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간 몇 번의 시련도 덤덤하게 넘긴 그였기에, 목표를 상실하고 무기력에 빠질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어쩌면 가족 모두가 그의 실패를 인정하기 싫어 애써 외면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가족들이 늘 든든한 집안의 기둥으로 서 있을 거란 미련한 믿음과 착각 속에 빠져 있는 사이 그는 누구에게도 아프다는 말조차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채 살았던 것입니다.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밟혀왔습니다. 딸들이 모두 부러워했던 집안의 장남. 베이비붐 세대로 대학 졸업 후 취업 1순위였던 은행권에 취직해 잠깐의 승승장구를 누렸던 그. 하지만, 명퇴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40대 창창한 나이에 직장의 쓴맛을 봐야 했던. 이후 적성에도 맞지 않는 사업을 폈다 접었다 반복하면서 견딤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생채기는 더 깊이 똬리를 틀고 상처로 남은 듯했습니다. 물질의 풍요에도 마음의 공허는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가 봅니다. 

무엇이 이리도 무미하게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그의 모습 속에 현대인의 자화상이 오롯이 들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오빠 속내를 알게 돼서 무엇보다 좋았다. 가족이라지만 자신을 드러내는데 우리가 서툴잖아. 우회적인 자리였지만 그래도 오빠 맘을 아는데, 보는데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어. 사는 게 다 힘든 여정이지만 지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 행복을 유예하는 사람만큼 어리석은 이도 없어. 오늘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내일도 행복할 수 없어. 여러 이유가 있을 테지만 앞으로 오빠 자신으로 살아봐. 오빠가 중심이 되어서 세상을 보고 일하고 사람을 만나. 배려라는 허울은 진짜 내 모습이 아니라는걸 알 거야. 관점을 바꾸긴 쉽지 않겠지만 오빠 삶을 살아. 오빠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아내도 자식도 엄마도 형제도 다 허울이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수 있는 거야. 오십 년 자식으로, 남편으로, 아비로 살았으니 이젠 오빠로 살아. 일하고 돈을 벌고 먹고 쓰는 것도 다 자기를 위해 하는 거야. 오빠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뭐 있냐. 눈치 볼 것 없어. 오빠 자신이 원하는 거 찾아봐. 사람이든, 일이든, 돈이든. 진즉 맘 헤아리지 못해 미안하지만 늘 응원할게. 힘내 오빠 사랑해.”

한 사람의 사례지만 베이붐세대 모두의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부모와 가족의 기대에 눌리고, 사회에 눌리고, 이제는 자신의 무게에 눌려 비칠대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가슴 소리를 내지 못하고 살아온 그들, 베이붐세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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