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해전 6용사
연평해전 6용사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5.06.29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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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부국장<천안>

영화 ‘연평해전’의 흥행몰이가 심상치 않다. 개봉 5일 만에 누적 관객수 143만명을 가뿐히 넘어섰다. 누구도 예상 못한 결과다.

섣부른 예측이지만 이대로라면 1000만 관객 돌파도 가능해 보인다. 우선 관객 수 상승 곡선이 가파르게 치솟는 추세다. 개봉 첫날인 24일 15만3000여명이었던 관객 수가 주말엔 평균 40만명을 넘어섰다. 영화 상영관 수도 667개에서 1013개로 늘었다. 흥행을 확신한 극장들이 앞다퉈 상영 횟수를 늘린 탓이다.

영화에 대한 평단의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다. 다소 긴 러닝타임(130분)에다 실화라는 한계를 딛고서도 흡인력 있는 영화를 만들었다. 함상 전투 장면, 해군의 선상 병영 생활, 우리가 몰랐던 연평해전 순국 용사들의 가정사 등이 사실적으로 묘사되면서 자칫 지루할 수 있었던 실화 극을 무리 없이 이끌어갔다는 평가다.

영화는 7년이란 기간의 오랜 산고 끝에 태어났다. 투자사가 바뀌고 주연배우들도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었으며 제작비가 모자라 대국민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투자금을 모금하는 것)을 해야 했다. 

그렇게 모은 돈이 전체 제작비 80억원 중 20억원에 달한다. 관련 기관들도 동참했다. 해군 부녀회는 계룡대, 진해 등지에서 바자회를 열어 3억원의 성금을 보탰다. 천안함재단에서 1억원, 해양경찰청 4500만원, 해양수산부도 4000만원을 지원했다. 

영화를 계기로 연평해전을 우리가 승리한 전투로 재평가해야 한다는 여론이 서서히 대두되고 있다. 우리 측 사상자(25명) 보다 북한의 사상자 수(사망 13명, 부상 25명)가 더 많았다는 것이 나중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와 관계없이 우리 측 피해가 컸던 것은 분명하다. 허술한 전투태세로 전장에 나갔기 때문이다. 군사학 전문가들은 당시 우리 측의 문제점을 크게 두 가지로 꼽고 있다. 빈약했던 화력과 어처구니없었던 전투수칙이다. 

우리 참수리 고속정 357호를 공격한 적선은 85㎜ 전차포와 14.5㎜ 기관총을 장착해 화력에서 월등했다. 이에 반해 참수리 357호는 그 화력의 절반도 채 못 되는 ‘벌컨포’와 60㎜ 기관총 등을 장착했을 뿐이었다.

더 큰 문제는 당시까지 우리 전투함의 대응기동 방법, 즉 교전 수칙이었다. 

당시 해군은 적함이 NLL(북방한계선)을 침투하면 경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의 순서로 대응하도록 했다. 

그때 참수리 357호는 적선을 선체로 밀어내는 차단기동을 하다가 선제 기습 공격을 받았다. 총을 든 적에게 맨손으로 맞서려 한 꼴이다. 이후 교전 수칙이 바뀌고 화력이 보강됐지만 당시의 피해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정치권이 연평해전에서 사망한 6용사를 순직자에서 전사자로 예우하는 법안을 처리할 계획이다. 이번 영화가 계기가 됐다. 

그동안 연평해전 6용사는 정부가 관련법을 개정하고도 소급 적용을 하지 못한다는 규정 때문에 여전히 일반 공무 중 사망한 순직자로 취급 받았다. 이 때문에 국가 보상금도 3000만원밖에 받지 못했다.

매년 새해 예산안을 처리할 때 걸핏하면 법정 처리 시한을 넘기던 국회의원들. 이런 법 조문 한 구절 바꾸는 데 13년이 걸려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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