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자나무 울타리
탱자나무 울타리
  • 임정숙 <수필가>
  • 승인 2015.06.22 18: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 임정숙 <수필가>

아련하다. 낯선 시골 길을 지나다 어느 집 탱자나무 울타리 하얀 꽃을 보곤 탄성을 질렀다. 이젠 거의 사라져 보기 힘든 귀한 풍경이다. 오랜만의 친구처럼 반가워 가슴이 먹먹하다. 

어릴적 고향 집 뒤뜰에 둘린 탱자나무 울타리의 기억은 참 강렬하다. 생긴 모양부터 예사롭지 않아서일까. 내가 자라면서 바라본 탱자나무의 사계절은 변화무쌍했다. 우선, 약간 모가 난 초록색 가지는 길고 드셌다. 그래서 겨울도 늘 푸른 나무처럼 보였다. 빈틈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한 가시는 손가락 두 마디쯤 되었다. 볼 때마다 험상궂어 눈이 어질어질했다. 

‘탱자나무 울타리는 귀신도 들어오지 못한다.’는 말을 어른들께 자주 들었던 생각이 난다. 촘촘한 가시나무 사이를 비집고 감히 들고양이나 다른 짐승들도 섣불리 다가오지 못했을 것이다. 집을 비워도 누군가 가시 울타리를 함부로 넘어올 순 없었을 테니 방어의 수단으로 좋은 나무였다. 그래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말소리까지 다 들리는 정감 있는 경계선이기도 했다.

시골에 버스가 잘 다니지 않던 시절, 우리 집 탱자나무 울타리는 먼 데서 초등학교를 오가는 아이들 길목이었다. 등교 시간이면, 삼삼오오 무리 지어 지나치는 시끌벅적한 소리는 아침을 여는 생기로움이었다. 어쩌다 노래를 유난히 잘하던 같은 반 머슴애 목소리라도 들리면, 가슴이 뛰기도 했다. 무언의 소통이 가능했던 곳이다. 학교가 가까워 늑장을 부리다가도 담장 너머 아이들 기척에, 부랴부랴 책가방 들고 뛰곤 했다. 

늦봄 뾰족한 가시나무에 핀 탱자꽃은 가냘프리만큼 청아하고 순박하다. 바람개비처럼 팔랑거리는 앙증맞은 꽃잎은 온 집안, 이웃까지 꽃향기를 퍼트린다. 지나는 이들에게 눈부신 봄의 오감을, 더욱 충만하게 했을 거란 상상은 과하지 않을 거다.

가을에 탁구공만 한 노란 탱자가 달리면 난 과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약재로만 사용하는 걸 뻔히 알아 쳐다보지도 않았다. 먹을거리가 부족하던 시절, 어린아이들은 먹음직하게 생긴 탱자 열매에 군침을 삼키기도 한다. 결국, 덥석 한입 물곤 시고 떫고 쓴맛에 놀라 휙, 던져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다 꼬장꼬장한 우리 할아버지 눈에라도 걸리면 벼락같은 고함에 놀라 줄행랑을 치곤 했다. 그걸 본 나는, 그깟 탱자나무집 손녀의 자만인지 고소하게 웃기도 했던 것 같다.

겨울날 탱자나무 울타리는 참새들의 천국이었다. 탱자나무 가시가 그리 빽빽해도 떼 지어 날아와 앉아있는 걸 보면 희한한 생각이 들었다. 눈이 많이 내리면 새들은 먹이를 찾아 사람 사는 동네로 모여들기에 그런 것임을 알게도 되었다.

탱자나무를 떠올리면 유독 떠오르는 분은 할아버지이다. 한 해 몇 번인지 탱자나무가 자라면 머리를 이발하듯 단정하게 똑같은 키로 잘라놓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노랗게 익은 탱자를 거두어 정성껏 말리거나 유용한 쓰임대로 만들어 보관하는 일까지 온전히 할아버지의 몫이었다. 아마도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탱자나무 울타리도 볼 수 없었던 듯싶다. 

직장이 서울인 아버지를 따라 내가 6학년이던 해 서울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자식들 보금자리로 마련한 서울 집은 아담한 주택의 콘크리트 담장이었다. 그때부터 우리 6남매는 문명에 깨이기 시작했다. 더는 자연과 벗하기 어려운 도시 아이들이 되었다. 

이젠 살아온 만큼 기억하고 있는 옛것이 참 많다. 그것이, 때론 회고적인 마음일지라도 현재와 미래로 나아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숨 가쁘게 지나가던 계절이, 탱자나무 울타리 하얀 꽃 아래서 멈춘 듯 호흡을 다듬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