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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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구확 <청주상당도서관 주무관>
  • 승인 2015.06.18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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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담론

임구확 <청주상당도서관 주무관>

하루가 멀다하고 TV에서 눈과 위를 자극하는 음식 프로그램이 방영된다. 특히 맛집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저 식당은 어디지?’ 라는 궁금증과 왠지 가 봐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이 든다. 나는 집에 관심이 많아 집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나오면 챙겨보고 그곳을 가보려고 한다. 

그러다가 노은주, 김형주 공저 ‘그들은 그 곳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라는 책을 보았다. 저자는 집을 단순히 피신처가 아니라 그 시대의 문화와 지은 이의 정신이 투영된 철학적 투사물로 보고 있었다. 책장을 넘기면서 지금까지 나의 집 기행은 집의 모양, 크기 등 이론적인 정보에 대한 지적 감동과 직접 거기까지 찾아갔다는 노력에 대한 감동이 전부였다. 그것은 집을 하나의 사물로만 봤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집이 그곳에 있는 특별한 이유와 그곳에 채워진 공간의 의미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책에서 알게 된 대로 집을 감상해 보고 싶어 대상을 선정하던 중 몇 년 전에 본 ‘가을로’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남자주인공이 죽은 여자 친구를 추억하며 가을여행을 떠나는데 그 장소가 담양의 소쇄원이었다. 

그래서 지난 봄 나는 ‘소쇄원’을 찾아갔다. 소쇄원은 조선시대 양산보라는 이가 정치에 뜻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와 가꾼 별서정원이다. 정치를 버리고 세상으로부터 은둔하기 위해 지은 적막한 공간이라는 예상과 달리 소쇄원은 자연과 연결된 통로였다. 자연에서 인공으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삶이 건축물과 공간을 통해 형상화 되어 있었다. 자연과 어우러져 살려는 조선시대 선비의 철학적 사유를 느낄 수 있었다. 크기와 두께가 제각각인 주춧돌과 구부러진 그대로 기둥이 된 나무는 자연이 집 속으로 들어앉은 느낌이었다. 특히 인위적으로 마당을 만들지 않고 좁은 터에 지어올린 광풍각을 비롯한 여러 채의 건축물들과 집안을 관통하여 흐르는 계곡의 물줄기는 적극적으로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사유한 집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집, 대한민국의 대표적 주거공간인 아파트에는 어떠한 특별함이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똑같은 구조와 재료로 단순히 집의 기본적인 기능을 위해 층층이 지어져 비인간적 공간이라는 오명이 붙은 아파트. 하지만 차가운 콘크리트 속에 사람들이 들어가는 순간 그곳에는 시간이 채워진다. 그곳은 빈 공간의 블록이 아니라 1층부터 꼭대기까지 각기 다른 꿈과 삶으로 쌓아놓은 추억의 공간이 된다. 블록의 윗면은 지붕이고, 휑한 하늘을 가려주는 가림막이다. 벽은 힘들고 고단했던 하루를 쉴 수 있도록 분리해 주는 경계선이다. 그리고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하루하루를 잇는 공간이고 기억과 꿈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똑같은 구조의 기성화된 아파트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는 우리지만, 격절된 블록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개성의 삶을 살고 있기도 하다. 일상적이지만 누군가와는 다른 오늘로 채워진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이 언젠가는 특별함을 만들어 줄 것이라 믿으며, 그 공간에 나만의 시간을 쌓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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