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구의 동화속풍경
김경구의 동화속풍경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1.07 10: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추수
황금물결 일렁이는 춘자네 논에 참새 떼가 몰려와 허수아비 모자와 어깨에 앉습니다. 허수아비는 심심했던지 참새를 쫓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던 며칠 후 추수를 시작했습니다.

"오늘 벼 벤다고 혔는디 야들이 뭐 하는 겨~어~여 일어나."

"어므이 지 오늘요. 이따 경숙이랑 어디 가기로 혔는디"

"야~야~ 좀 봐 오늘랑은 셀 생각은 아예 말그래이. 느그 아버지 아심 불호령 떨어져. 어여 언능 일어나지 못혀."

언제 일어나셨는지 아버지의 쓱~ 쓱~ 숫돌에 낫 가는 소리가 마당 끝 쪽에서 들려 왔습니다. 어머니도 일찍 검정 가마솥에 한가득 밥을 해 놓으셨습니다. 어머니만 집에 계시고 모두 나와 시작한 벼 베기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슬쩍 곁눈질을 해보면 여기저기 언뜻 언뜻 식구들은 벼가 고개를 숙인 만큼 허리를 숙이고 열심히 일을 하고만 있었지요. 벼를 베던 춘자는 슬쩍 일어나려 허리를 펴 봅니다. 순간 춘자는 깜짝 놀랐습니다. 허리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조금만 움직여도 허리가 아파와 하마터면 눈물이 찔끔 날 뻔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춘자야, 춘자야. 이것 좀 받아가라."

어머니가 저 멀리 좁은 논둑길로 큰 고무대야에 점심밥을 이고 막걸리 담은 양은주전자를 받아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춘자는 언제 허리가 아팠냐는 듯 재 빨리 달려가 주전자를 냉큼 건네받습니다. 아버지도 어머니 머리 위에서 고무대야 내려놓는 것을 도와주십니다. 안도의 한숨을 폭 내 쉬는 어머니의 머리 위에 두툼했던 똬리는 납작해 졌습니다. 어머니의 목도 자라목처럼 쏙 들어간 듯합니다.

어머니가 내려 논 고무대야에서는 우리가 평소 먹고 싶었던 멸치가 둥 둥 뜬 허연 국수가 유난스레 빛났고, 어느샌가 국수 한 그릇을 뚝딱 비우신 아버지는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십니다. 그러자 옆에 앉아 계시던 어머니는 뻘건 포기김치를 손으로 쭉~ 찢어 아버지의 입에 넣어 드립니다. 김치를 오물거리며 들녘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얼굴엔 흐뭇한 미소가 저녁노을처럼 잔잔히 번지고 있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