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
오디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5.06.07 17: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보슬비가 소리없이 내린다. 높은 산자락이 물 안개에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다. 고향처럼 포근한 산골의 여름은 아침나절 쓸어놓은 마당처럼 고요하다. 큰 나무 옆으로 다가갔다. 뽕나무였다. 어릴 때 맛나게 따 먹던 오디. 그 오디가 큰 뽕나무에 거뭇거뭇하게 많이 달려 있다.

오디는 흠뻑 익어 진한 포도주빛을 띠고 있다. 이슬비에 젖은 오디를 한 개 따 입에 넣으니 달콤한 맛이 입안으로 퍼진다. 어린 시절이 되살아난다. 오디는 뽕나무의 열매다. 지금은 많은 사람에게 잊힌 것으로 추억이 서린 열매다. 특히 요즘은 뽕과 누에가 사람 건강에 좋다 하여 웰빙식품으로 인기가 대단하다. 내가 어릴 때 뽕나무는 누에의 먹이로 가정의 수입원이 되기도 하였다. 우리 집에서도 동생과 중·고등학교 다닐 때 수업료를 마련하는 하나의 수단이었다.

어머니는 내게 뽕을 따는 일을 가끔 맡기셨다. 초여름이 지나면 누에도 크게 자라 뽕을 많이 먹기 시작한다. 한 번 그 모습을 보면 깜짝 놀란다. 소나기가 내리는 것 같이 빗소리가 들릴 때도 있다. 누에가 넉잠을 자고 나면 몸집도 커지고 따라서 먹는 양도 많아진다. 때문에 뽕잎 따기도 매우 힘들다. 뽕을 따면서 가끔 붉은빛과 초록빛이 감도는 설익은 오디를 따서 먹었던 기억도 잊을 수 없다. 신맛에 눈이 저절로 감기던 아련한 추억….

일손이 필요해 가끔 부모님을 도왔다. 햇빛에 얼굴을 익히며 뽕을 따는 것도 지루했다. 뽕 따는 것은 뒤로하고 뽕나무 가지에 앉아 잘 익은 오디를 따먹으면 간식이 없던 시절 최고의 맛이 있었다. 그 오디를 조금 전에 큰 뽕나무에서, 40여 년이 흐른 지금 그 맛을 본 것이다.

내가 잊을 수 없는 것은 누에를 정성껏 키우시던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소작농에 여섯식구 살기도 매우 힘들었다. 자식들 학자금 마련의 방법으로 양잠을 하셨다. 한 등급이라도 더 받기 위해 무단히 노력하셨던 부모님이다.

오디를 먹으며 달콤한 맛과 함께 아련히 젖어드는 추억, 눈시울이 왜 갑자기 뜨거워오나? 오래전에 먼 나라로 가신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마지막 가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머니는 다리도 불편하셨고 정신도 어린 아기처럼 되셨다. 내 어린 시절 어머니는 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셨다. 노래도 좋아하셨으며 남의 말을 듣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말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세월이 많이 흘러도 자연은 여전히 그곳에 변함없는데 우리네 삶은 세월 따라 이렇게 변하는 것일까? 고생하시며 사셨던 어머니의 은혜로 나는 공직에서 은퇴하여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의 땀과 눈물이 내겐 보이지 않지만 가득 배어 있다. 이젠 철들어 어머니의 그 모습을 이해할 나이가 되었으나 어머니께서는 계시지 않고.

어머니께서 지금 내가 사는 모습을 아시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가끔 고향에 가면 학교 다닐 때 쌀이 없어 보리밥으로 도시락을 싸주신 이야기를 하시며 눈물을 닦으시던 어머니. 이젠 넉넉하진 않지만 자립하여 평범하게 살고 있다. 마음에 안타까움만 밀려온다.

오디 맛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종이컵에 잘 익은 오디를 따 넣으며 나는 어머니를 생각했다. 무명 앞치마에 가득 채워오시던 싱싱한 뽕잎 냄새가 지금도 나는 것 같다. 그리고 뽕잎 따며 딸 주려고 가져오신 오디도 그리워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