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 사는 집
그리움이 사는 집
  •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 승인 2015.06.04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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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매캐한 연기가 부엌에 가득하다. 굴뚝은 연기를 빨아들이지 못하고 다시 아궁이로 토해내고 있다. 뭉실뭉실 역류하는 연기가 눈을 따갑게 쑤시고 있다. 눈에 찔끔 눈물방울이 맺힌다. 눈물을 손등으로 훔친다. 푸덕이는 불안한 소리가 귓전을 흔든다.
 
  딱새다. 딱새가 처마 밑을 오가며 불안한 날갯짓을 한다. 어안이 벙벙한 나는 그저 딱새를 동공에 담을 뿐 아무 동작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틈에 딱새가 부엌으로 날아 들어왔다. 천정을 한 바퀴 헤집더니 순식간에 밖으로 날아가 버린다. 내 눈을 의식한 것일까? 딱새는 이내 푸덕이며 하늘 속으로 사라진다.
 
  아무래도 아궁이에 재가 채인 것 같다. 아궁이의 재를 모두 긁어내고 다시 불을 지폈다. 아까보다 훨씬 불이 잘 타오른다. 연기도 서서히 부엌에서 빠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다시 푸덕이며 새가 날아왔다. 딱새는 또다시 부엌 근처를 맴돌고 있다. 이상하다 싶어 부뚜막에 올라가 까치발을 딛고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벽과 천장 사이에 작은 공간이 보였다. 뭔가 있다. 휴대폰에 깔린 플래시 라이트 앱을 켜고 자세히 들여다본다. 여리디 여린 생명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딱새는 그 작은 공간에 깃털을 가득 쌓아서 집을 만들었던 것이다. 포근해 보였다. 포근해 보이는 그 깃털 속의 집안에서 갓 부화된 듯한 딱새들이 생명의 몸짓을 하고 있었다.
 
  어미 새는 얼마나 불안했을까? 매캐한 연기 속에 아기들을 놓고 얼마나 가슴을 졸였을까? 그해 여름 우리 엄마도 그랬을까? 나와 동생을 커다란 집에 놔두고 일을 나서야만 했던 우리 엄마. 나와 동생은 대숲에 둘러 쌓인 시골집에서 고요하고 적막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대숲에 일렁이는 바람 소리, 밤하늘 가득 박혀있던 별빛들, 까만 밤을 온통 집어삼킬 듯한 개구리울음 소리가 아직도 눈 감으면 생생하게 떠오른다. 엄마는 먼 길을 떠나기 전에 뒤꼍에 토마토, 가지, 고추, 참외, 수박 모종을 가득 심으셨다. 시루에 콩나물을 한가득 앉히고, 김치를 큰 통에 가득 담아 냉장고를 채우셨다. 멸치를 한 박스 사 놓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시루에 콩나물이 비어갈 무렵 엄마는 새 옷과 운동화를 손에 들고 논길을 따라 걸어오셨다.
 
  작은 둥지를 한참이나 바라본다. 입을 쩍쩍 벌리고 어미 새를 기다리는 딱새들은 영문도 모른 채 매캐한 연기 속에서 스멀스멀 스며드는 작은 변화를 감지했으리라. 나는 그들에게 무법자이며 침입자이다. 어미 새에게 나는 공포의 대상이리라. 부뚜막을 조용히 내려왔다. 그리고 지피던 아궁이의 불을 부지깽이로 두들겨 끄기 시작했다. 한참을 실갱이 한 끝에 불씨는 잦아 들고 연기도 사라져 갔다. 아궁이 뚜껑을 덮었다. 그리고 부엌의 전등을 끄고 부엌을 나왔다. 부엌을 나와 숨어서 딱새를 지켜보았다. 어미 새가 둥지로 들어갔다. 어미의 푸드덕거리던 불안한 날갯짓은 사라지고 부엌은 다시 고요해졌다.
 
  내 작은 집에 둥지를 튼 딱새들이 고마웠다. 딱새 식구들이 건강하게 자라서 푸른 창공을 훨훨 날 수 있는 그 날까지 나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지 않을 것이다. 문득 대숲에 쌓여 보이지 않던 아득한 그 집이, 일렁이는 바람 속에서 포근하게 나를 품어주던 그 시절 그 집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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