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시꽃
아까시꽃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15.05.21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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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봄의 나이가 꽉 찼다. 들길에 아까시꽃 향기가 진동한다. 며칠 전 시부모님 기일이었다. 육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까시꽃이 향기를 내뿜으면 눈물이 난다. 

그날은 평화롭고 따뜻한 주말이었다. 여섯 식구가 얼굴을 보면서 아침밥을 먹었다. 새벽에 출근하는 남편, 대학생이던 아이들. 주중엔 한자리에 둘러앉아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함께 밥을 먹자고 했다. 그때는 어찌 그리 바빴던지. 주말에도 겨우 아침만 먹고 남편은 지인의 자녀 혼사에 참석하려고 집을 나섰고, 나는 예술제행사로, 아이들은 시험기간이라 도서관으로 갔다. 아버님 어머님도 봄처럼 곱게 차려입고 작은아버님 생신이라 진천으로 가신다며 나가셨다. 

우리는 서로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행선지로 향했다. 헤어지고 채 30분이나 지났을까? 나는 목적지에 도착도 하기 전 전화를 받았다. 어머님, 아버님 타고 가신 차가 사고가 났다는 전화였다. 차를 돌려 병원으로 갔다.

청천벽력이 이런때 쓰는 말이던가. 상대방 차량의 무모한 실수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그 아침이 두 분과 마지막 밥상이 될 줄 그 누가 알았으랴. 이 세상 모든 꽃들이 피는 축제의 봄에 아무 예고없이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작별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부모님을 잃었다. 육년전 일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지금처럼 아까시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오월 어느날이었다. 우리 내외가 어머님 아버님 모시고 꽃구경을 나갔다. 이정골 호숫가에 아까시꽃이 만발하여 향기가 진동을 하고 꽃가지가 늘어져 손에 닿을 듯했다. 나는 장난기가 발동하여 남편에게 꽃을 꺾어달라 했다. 남편은 어른들 앞이라 그런지 들은 척도 안 하고 운전만 했다. 옆에 계시던 아버님이 차를 세우게 하고 창문을 열고 꽃이 많이 달린 가지를 툭툭 꺾어주셨다. 나는 코끝에 냄새를 맡고 꽃잎을 따먹으며 차 안을 온통 아까시꽃 향기로 채웠다. 아버님께도 드셔 보라고 했다. 며느리가 하는 짓을 그저 바라보고 웃으셨던 기억이 새롭다. 아버님은 하나뿐인 이 며느리를 많이 의지하고 귀히 여겨주셨다. 

우리는 가던 길을 언제 멈춰야 할지 모른다. 모르며 가는 것이 인생이다. 가던 길을 멈추게 되면 한 생애가 끝나는 것이다. 인생이 허무한 것이라더니 우리 시부모님을 보내드리고 절실하게 알았다. 아무일 없을 때는 “잘 다녀오세요”, “잘 다녀와라” 이런 사소한 인사를 나누는 일이 얼마나 큰 행복인 줄 모른다. 

앞다투어 꽃이 피는 이 계절 봄. 봄꽃이 다 피고 이제는 여름으로 가는 시간, 이전에는 내게 아까시꽃은 그저 한 계절 불쑥 피었다가 시드는 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특별한 꽃, 특별한 향기다. 이십칠년을 내 아버님으로 사셨던 분의 영혼으로 기억한다. 나한테 아까시꽃은 북아메리카에서 왔고 콩과의 아까시나무에 속하는 교목이며 이런 학문적인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아버님과 잠시 즐거웠던 시간의 꽃으로 기억될 뿐이다. 부모님과 웃던 날이 어제처럼 생생한데 육년의 시간이 흘렀다.

아버님의 환한 미소처럼 아까시꽃이 환하게 피었다. 낯익은 향기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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