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를 떠난 콩새
둥지를 떠난 콩새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5.05.17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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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골목은 이른 아침부터 재잘대는 새소리로 활기가 돈다. 도심 골목길이지만 집집마다 작은 나무가 있어 가끔 새소리를 듣는다. 내가 바라던 콩새와의 동거가 3주간 지속되었다. 우리 집에 둥지를 틀고 그 바람이 다 이루어져 갈 때 콩새는 둥지를 떠났다. 그동안 마음은 햇솜 같았다.

아침 산책을 마친 후 집에 도착하여 대문을 연다. 웬일일까?

눈앞에 작은 새들이 여러 마리가 푸드덕거리며 날갯짓을 한다. 주목과 단풍나무에서 보도블록에 내려앉고 어떤 것은 옆집 시멘트 담을 넘다 떨어진다. 이 모습을 본 어미새는 새끼를 따라 마당에도 있다가 전깃줄에, 그리고 나무에도 앉는다. 잠시 그렇게 실랑이가 벌어졌다. 조용한 집안이 새소리로 어수선하다. 둥지엔 마지막 남은 아기새 한마리가 신발장 위에서 바라보며 짹짹인다. 겁쟁이 같다. 몇 분 후엔 그 아기새도 둥지를 마지막으로 떠났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3주 정도 우리 집에 함께 살아 정이 들었다. 여섯마리의 새끼들은 다 어디로 날아갔는지. 가끔 어미새만 뜰 옆 전깃줄에 앉아 연거푸 새끼를 찾는다. 그러나 아무 대답이 없다. 어제까지도 짹짹거리며 부지런히 물어오는 어미새의 먹이를 받아먹었다. 지금은 독립할 때가 됐는지 아침에 한바탕 그렇게 난리가 난 것이다. 어미새는 얼마나 허탈할까. 그 까맣고 작은 눈망울이 슬픔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보여 애처롭다. 며칠 전에 막내가 와서 어렵게 촬영한 둥지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기새가 제법 많이 자랐다. 여섯마리가 살기 비좁을 거라 생각되었다.

나는 새와 함께 잠시 지내며 우리의 삶과 닮은 모습을 본다. 여섯마리를 힘겹게 기르는 부지런한 어미새 부부, 새끼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은연중 보았다. 날이 좋은 날은 그래도 괜찮았다. 어제 같은 경우는 달랐다. 저녁 무렵 비바람이 마구 부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비를 맞으며 어둠이 막 내리는데 먹이를 물고 대문에 앉자 나를 몇 번 바라본다. 곧 둥지로 가 짹짹거리는 새끼들에게 먹이를 먹인다.

은연중에 부모님 생각에 젖는다. 우리 부모님도 삼남매 수업료 마련을 위해 시골인 산남동에서 육거리시장까지 십리도 넘는 길을 채소광주리를 이고 다니셨다. 여름이면 이마에서 흐르는 땀이 눈을 적셨고, 겨울이면 칼바람을 맞으며 시장을 오가셨다. 작은 푼돈을 모아 우리 삼남매의 뒷바라지를 묵묵히 하셨다. 그 은혜로 난 이렇게 노후를 평안히 지낸다. 어미새의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에 젖었다. 지금은 곁에 계시지도 않는데.

그날 어미새가 하루 종일 우리 집 근처에 와서 운다. 오후에 앞집 매실나무에서 아기새의 소리가 들린다. 뜰에서 바라본다. 두마리가 매실나무 가지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앉아 있다. 그렇게 어미새가 찾더니 저녁 무렵에 겨우 찾은 것이다. 어미새의 입엔 아직도 먹이가 물려 있다. 우리네가 결혼한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는 것처럼.

둥지에서 짹짹이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던 날 좀 지나면 떠날 거라 생각했다. 그래도 서운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다. 어제까지만 해도 신기하게 바라보던 둥지 있는 곳에 적막이 흐른다. 그렇게 열심히 둥지를 찾던 콩새도 왕래가 뚝 끊겼다. 남편과 나의 마음도 허전하다. 바라봐도 높아 둥지는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 드나들던 빈자리를 새들이 채워주었는데…. 막둥이 콩새가 둥지를 떠나기 전 찍은 사진을 스마트폰을 열고 들여다본다. 내년에도 다시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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