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피아노
  • 임정숙 <수필가>
  • 승인 2015.04.2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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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정숙 <수필가>

화초에 물을 주다 요란한 소음에 밖을 내다보았다. 이사를 하나보다. 피아노 한 대를 조심스럽게 옮기느라 몇 사람이 애를 쓰고 있다. 고개를 돌리려다 잊었던 이름처럼 다시 피아노에 눈이 머물렀다. 

흠씬 비가 내리고 있었다. 물기 젖은 연푸른 나무 잎사귀의 풋풋함이 더없이 싱싱했다. 창 너머 풍경에 정신이 팔렸어도 일순간 조용해짐을 느꼈다. 음악 선생님 대신 얼굴이 가무잡잡한 은숙이가 피아노 앞으로 걸어나갔다. 무슨 영문인가 싶었다. 

그 아이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나비가 되었다. 꽃이 피는 듯, 꽃이 지는 듯 예사롭지 않던 고요하고 청아한 선율은 갈수록 마음을 빼앗았다. 성숙함이 풍기던 은숙이의 고즈넉한 표정과 예기치 않던 애절한 연주곡은 끝이 나고도 전율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선생님의 부재로 은숙이는 피아노 독주회를 열게 된 셈이었다. 연주 몇 곡을 듣고 감상 후기를 쓰는 일이 우리의 과제였다. 이미 나는 제자리에 서서 거부할 수 없이 비를 맞는 나무처럼 맨 처음 각인된 곡으로도 여운이 충만했다. 

열다섯살인 나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 곡은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 중 ‘남몰래 흐르는 눈물’이었다. 태어나 그토록 가슴 저미는 곡을 들려준 감동만으로도 은숙이를 동경했다.

은숙이와 가까워진 이후로 나는 피아노를 잘 연주해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모차르트 악보를 수도 없이 베끼던 친구처럼 미래의 피아니스트까진 아니더라도 세상 희로애락의 마음을 예술로 승화하고 표현할 수 있다면 더 풍요롭진 않을까. 새삼 발견한 희열로 가슴이 뛰었다.

음대생이던 다른 친구의 언니를 졸라 적은 비용으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학교 공부를 소홀히 하는 데다 적지 않은 레슨비에 취미로 피아노를 배워야겠다는 사실은 집에선 통할 리 없었다. 교습비는 부모님께 필요한 용돈을 받거나 참고서를 살 때마다 부풀려 받은 금액으로 해결되었다. 

물론 피아노 배우기 도전은 지속적이진 못했다. 무언가 미칠 정도의 절실함이 있지 않고서야 처음의 다짐이 한결같긴 어렵다. 고작 동요 몇 곡의 연주 실력으로 피아노와의 인연은 흐지부지 막을 내렸다.

결혼해서 큰딸이 유치원에 들어갈 무렵 빠듯한 형편임에도 고집을 피우고 사들인 건 피아노였다. 피아노를 거실에 들여놓은 날 설렘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또다시 피아노를 배우고자 하는 열의는 흐른 세월만큼 희미해졌다. 이젠 아이에게 엄마가 어린 시절 갖지 못했던 무한한 가능성의 기회를 무리해서라도 열어주고 싶은 욕심이 더 컸다. 

엄마의 의도와는 멀어졌다. 아이들은 길고 지루한 피아노 교습에 싫증을 내고 피아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어떤 곡이든 자유롭게 연주할 때까지란 설득과 닦달은 소용없었다. 어쩌면 대리만족의 오랜 나의 집착과의 싸움이었다. 

몇 년 동안 무용지물로 먼지만 쌓이고 집안에 육중한 짐으로 전락한 피아노는 이사를 앞두고는 번번이 갈등을 겪게 했다. 미뤄왔던 마음을 다잡고 가족과 의논 끝에 피아노를 지인에게 보내기로 했다.

피아노를 집 밖으로 내놓던 날 망연한 심경으로 눈물을 쏟은 건 소유욕 때문은 아닐 거다. 오래전 한 친구의 피아노 선율로 간직했던 나의 열망과 아이들에게 쏟았던 꿈 모두를 잃은 듯한 공허함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지나다 피아노 소리를 듣게 되면 품 안을 떠나보낸 자식처럼 발길을 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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