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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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1.0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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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은 사람들을 뻔뻔하게 만든다
김남균 <민주노총충북본부 사무처장>

1931년 5월29일 아침 평양 을밀대 지붕위에서 한 여성노동자가 우리 노동운동사 최초의 고공농성, 1인 시위를 벌였다. 평양 평원고무공장노조 지도자 강주룡이었는데, 저임금을 고발하기 위해 고공농성을 택했다. 그리고 을밀대 고공농성후 경찰에 연행된 강주룡은 옥중 단식 투쟁 등으로 일제 경찰에 맞서 투쟁하였다. 다음해 강주룡은 또 다시 체포, 1년 후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두 달 동안 앓아 누웠던 강주룡은 1932년 8월13일 오후 3시반 평양 서성리 빈민굴 68-28호에서 한 많은 세상, 그러나 치열하게 살았던 31년 삶을 마감했다. 시간이 지난 지금,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거의 없다.

1935년 현장출신의 노동운동가 이재유는 서울지역에 기반한 노동조합 활동그룹 '경성트로이가'를 조직했다. 일제하에서 이례적으로 여성노동자들을 집중적으로 발굴했고, 많은 여성운동가들이 발굴됐다. 1935년도 경성트로이카와 이재유는 '8시간 노동제 실시, 국민연금 및 국민건강보험 실시' 등을 요구하며 투쟁했다. 아! 그시대에 그런 요구를 내걸고 투쟁하다니 정말로 대단한 일이다. 이재유는 36년에 일제경찰에 붙잡혔고, 탈옥에 성공했으나 다시 37년도에 투옥되었다. 그리고 광복이 되기 바로 전해, 감옥에서 쓸쓸히 죽어갔다. 강주룡과 마찬가지로 지금, 이재유를 기억하는 노동자들도 거의 없다.

1961년 박정희는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후에 모든 노동조합에 대해서 해산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그 뒤, 이승만 정권이 자신의 통치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설립했던 대한노총의 간부 9명을 선발해서 중앙정보부로 데려가 3개월 동안 훈련을 시킨다. 그리고 이렇게 중앙정보부에서 교육을 받은 9명이 박정희로부터 노조재건명령을 받고 2개월만에 뚝딱 11개의 산별노조를 만든다. 그리고 11개의 산별노조가 모여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하 한국노총)을 탄생시킨다. 이렇게 한국노총 어용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정권에 의해 어용으로 고착화된 한국노총을 바꾸기 위해 전태일 열사를 비롯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내던졌다. 그렇게 수십년이 흘러왔다. 그러나 이제 세월이 흘러 한국노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출생의 비밀을 기억하는 이도 별로 없다.

그리고, 오늘 그 한국노총의 위원장이라는 분께서 민주노총해체투쟁을 선언했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을 팔아넘긴 대가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노사정 야합을 밀실에서 해내더니, 뭔 자신감이 붙었는지 민주노총까지 해체한단다. 참 대단하다. 정권의 지령을 받아 민주노조를 탄압하던 과거의 역사를 잊었는지, 다시 제모습으로 돌아가 민주노총을 해체한단다. 망각은 사람들을 참 뻔뻔하게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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