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천은 의구한데 우리는 이렇게
산천은 의구한데 우리는 이렇게
  • 전영순 <문학평론가·수필가>
  • 승인 2015.03.22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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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순 <문학평론가·수필가>

두타연을 보러 가는 길, 민통선의 공기는 참 산뜻하다. 몇시간 앓고 있던 멀미와 두통이 한숨에 달아난다. 인적이 드문 청정지역에 들어서니 몸이 먼저 반응한다. 내가 가고 있는 산 너머에는 북한군의 초소가 있고 능선 아래에서는 우리 신병들의 훈련받는 사격 소리가 빵빵 터진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가장 위험한 곳에서 여유를 부리고 있다. 해방 후 북한 땅이었다는 곳, 한국전쟁으로 한국령의 민통선이 된 곳에서 말이다. 

비포장도로 옆 접근금지 구역에는 지뢰로 인해 즐비한 나목과 너부러진 고목이 방치되어 있다. 나목들도 봄이 오니 따뜻한 봄볕에 몸을 데우는 중이다. 비애가 가득한 땅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새싹을 틔우는 나목과 같이 내 옆에는 나라에 몸을 맡긴 아들이 타고 있다. 

6주간 신병훈련을 마치고 부모와 재회했다. 깡마른 아들의 모습이 지뢰밭에 서 있는 나목과 같다. 가늘고 하얀 손등에 거뭇하게 얼룩이 남아 있는 손을 자꾸 감춘다. 나는 아들이 마음 아파할까 봐 힐끗힐끗 쳐다보며 눈물을 머금었다. 

수료식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 아들이 얼마 되었다고 비닐하우스가 고층 아파트로 보이고 양구 시내가 이렇게 큰 도시인 줄 몰랐다며 눈을 굴린다. 군에 가기 전 말썽꾼으로 잔소리만 듣던 아들이 측은해 보인다. 우리는 차 안에서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외박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아들에게 엄마·아빠가 바쁘다고 외박이 아닌 외출로 접수하고 나온 상태다. 아들은 우리의 의견을 먼저 물어봤다. 바쁘면 신병교육대로 돌아가면 된다고 오히려 우리를 위로한다. 훈련 중에 뭐가 제일 어렵더냐고 물으니 사격이란다. 12발을 맞혀야 합격인데 11발로 불합격했단다. 덧붙여 눈이 이상한 건지, 총이 이상한 건지, 본인 자세가 이상한 건지 도대체 적중이 안 되더라며 아쉬워한다. 군에 있을 때 훈련 제대로 받고 몸 좀 만들어서 나가야겠다며 경소(輕笑)을 보낸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펀치 볼이 내려다보이는 남방 한계선에서 가장 가까운 을지전망대에 도착했다.

망원경 없이도 북한군의 초소와 보초 서는 북한군의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농사철에는 북한군이 화전(火田)에서 농사를 짓는 모습까지도 볼 수 있단다. 북한과 접경거리가 750~900m밖에 안 되는 거리에서 서로 염탐하고 있다니 참으로 묘한 관계다. 전쟁세대가 아닌 내가 봐도 참 신기하다. 안내원이 선녀폭포를 가리키며 이전에 북한에서 한국군인들을 유인하기 위해 여자군인들이 그곳에서 목욕을 했단다고 전했다. 이에 뒤질세라 한국에서는 1992년 북한군이 훤히 보이는 곳 가칠봉에서 미스코리아 수영복 심사를 했다니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발밑으로 3중으로 된 철조망이 보인다. 본인 스스로 우수전투병으로 지원해 간 아들이 근무해야 할 곳도 백두산부대 최전방 감시초소(GP, GOP)다. 부모의 기우와는 달리 아들의 각오는 단단해 보인다. 훈련병때 누구는 빽이 있어 초코파이도 두개 먹는다 하기에 듣고 있던 장교출신인 아빠가 농담삼아 아빠 빽으로 편한데 보내줄까 하니 절대 그러지 말라고 손사래를 친다. 

복귀시간이 임박해오자 아들이 좋아하는 고깃집에 들렀다. 부대에서 나오자마자 통닭을 먹었던 아이는 삼겹살도 아주 달게 먹는다. 서서히 헤어져야 할 시간 아이는 당당하게 부대에 들어갔고 우리는 등을 돌렸다. 외박을 받은 아이를 들여보내고 내려오는 길은 칠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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