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幽靈)이 어디 병원 수술실에만 있겠습니까
유령(幽靈)이 어디 병원 수술실에만 있겠습니까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15.03.19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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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一筆

유령수술, 이 말이 언제부터 생겨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뉴스를 통해 들을 때마다 참으로 묘한 느낌이 든다. 

성형외과에서 환자를 전신마취시킨 뒤 집도의사를 바꿔치기 하는 바람에 예뻐지려다가 되레 얼굴을 망친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턱 수술을 한 환자는 감각을 잃거나 비틀어지는 개구(開口)장애를 앓는가 하면 안면 윤곽 수술을 받은 환자는 입이 돌아간다고 하니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분명 환자는 병원의 유명세를 듣고 찾아 왔을텐데 의술이 한 단계 낮은 의사, 심지어 무자격자가 환자들이 잠든 사이에 수술을 하고 있다는 현실이 좀체로 믿어지지 않는다. 

사람의 생명을 놓고 의사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를 되뇌지만 얼마전의 또 다른 파문, 배를 가른 환자를 옆에 놓고 수술실에서 피자파티를 하는 의료진의 생생한 동영상이 자꾸만 오버랩돼 가슴만 더 먹먹해진다. 급기야 ‘유령수술감시운동본부’까지 생겼으니 할 말이 없다. 

굳이 유령수술의 책임을 묻는다면 당사자인 의사가 우선 떠오르겠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따로 있다. 우리 사회의 먹이사슬 문화다. 많이 달라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의사는 환자들에게 갑(甲)이다. 

입원환자들이 자신의 병세나 치료과정을 의사로부터 상세히 듣기란 쉽지가 않다. 비싼 돈을 들인 환자가 더 당당해야 하는데도 현실은 정반대다. 

간혹 시설이 좋은 대형 종합병원을 굳이 마다하고 조그만 병·의원을 고집하는 환자들을 보면 이런 이유가 크다. 아무래도 작은 병원일수록 의사와 환자 간의 스킨십은 오히려 더 낫다.

의사에 대한 환자들의 믿음과 기대심리는 절대적인데도 이처럼 무책임하게 집도의를 바꿔치기 하는 것은 사회관계의 먹이사슬, 그리고 이로 인한 왜곡된 권위문화의 발로라고 보면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를 내 생명처럼 여기는 의사가 있는 반면 환자를 그저 만만한 ‘봉’쯤으로 여기는 의사들도 부지기수다. 의사로서의 자격도 안 되는 사람이 의사인 척하는 ‘유령 현상’은 꼭 병원에만 있는 게 아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 전체가 유령들의 난장판인지도 모른다. 요즘들어 특히 더 그렇다. 

이름은 있는데 실체가 없는, 혹은 이름은 맞는데 실체가 애매모호한 사람들이 도처에 넘쳐나면서 이들이 만들어내고 집착하는 특권과 권위의식이 사회와 나라를 심각하게 희극화시키고 있다. 안보를 소리높여 외치는 장관일수록 본인은 물론 그 자식에 형제까지 어김없이 병역을 기피했다. 보나마나 이들은 전쟁이라도 나면 가장 먼저 도망간다. 

자원외교를 한다면서 엄청난 국민 돈을 내버리고도 양심의 가책은커녕 되레 이를 빌미로 뇌물을 챙긴 그야말로 나쁜 위정자들, 딸같은 캐디를 파렴치하게 성추행하고도 젊은이들을 가르치겠다며 대학강단까지 탐한 추악한 전직 고관대작, 자신들의 비위를 희석시키기 위해 김영란법에 슬그머니 민간 영역까지 포함시킨 국회의원들, 자기에게 좀 서운케 했다고 해서 세월호 유가족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한 정신나간 정치인, 학점과 학위를 무기삼아 여제자들을 성노리개로 삼는 교수 등등. 

이들이야말로 이론의 여지가 없는 유령들이다. 이름만 있지 정작 그들이 갖춰야 할 실체는 없다. 진짜가 아닌 ‘가짜’들인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나라와 사회의 지배세력이 되고 있고 또 실제로 그 권력과 권위를 맘껏 누리며 세상을 호령한다. 이보다 더한 유령사회, 유령국가도 없다. 

느닷없이 저 멀리 부산에서 이명박 구속 국민서명운동이 시작됐다. 이른바 사자방(4대강·자원외교·방위산업)으로 상징되는 국책 실정과 대법원 판결로 결론이 난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을 규탄하는데 따른 것이다. 

이 소식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또 다른 유령을 떠올린 사람들이 많다. 이미 전 정권에서 벌어진 일들조차 유령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주는 마당에 그 유령을 손보겠다고 덤벼드는 또 다른 유령은 과연 누가 될지가 아주 몸서리치게 궁금해지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우리의 야담(野談)에, 유령은 절대로 오래 살지 못했다. 그러기에 우선 수술실의 유령부터 때려잡아 고통받는 환자들의 한(恨)을 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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