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럭실의 봄
그럭실의 봄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15.03.19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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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요 며칠 바람이 심하게 불고 비가 내렸다. 오늘은 화창한 햇살이 눈 부시다. 햇살의 유혹을 뿌리치고 오랜만에 마음잡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런데 전화벨이 울린다. 반갑지 않게 받았다. 문우였다. 뚜렷한 용건 없이 그냥 봄이 오는 소리가 시끄러워 집안에 있을 수가 없단다. 그 봄이 왜 나한테는 안 오고 그대에게만 오느냐 했더니 몸매 되고, 얼굴 되고, 성격이 좋아서 그렇단다. 배꼽 빠지게 웃었다. 함께 웃고 나니 내게도 봄이 오는듯 했다. 이런 문우의 안부전화가 봄이다.

벌써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는 2월도 가고 3월도 중순이다. 나는 문우와 통화 후 텃밭으로 나갔다. 아직은 냉기가 많은 바람이 무서워 목덜미를 싸맸다. 뒷짐지고 느릿느릿 걷는 노인의 걸음으로 오는 그럭실의 바람에 봄이 들어 있었다. 

그럭실의 작은 텃밭은 우리 내외가 봄부터 가을까지 일하는 재미, 먹는 재미, 노는 재미를 배워가는 교실이다. 산에서 내려오던 식수도 꽁꽁 얼어 있었다. 봄바람에 풀려 시냇물 소리를 내며 흐른다. 물소리만으로도 봄의 생기가 난다. 

그럭실이란 지명 때문에 이곳에 터를 잡은 지 3년. 그럭실의 뜻이 궁금하여 면사무소에 갔었다. 문헌에 나와 있는 것은 글 읽는 소리가 억수로 많이 들리는 마을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글억실이었단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말의 유음화 현상으로 그럭실이라 부르게 되었단다. 

그럭실은 산속 오지라 그런지 개발이 안 되었다. 새것이 없다. 서두르는 법도 없고 팔팔하게 날 선 소리도 없다. 사람도 집도 다 낡고 늙었다. 나는 그 느림이, 낡음이 좋다. 나도 이곳에서 세상일에 무뎌지며 여유롭게 나이 들어갈 것이다.

겨울이 끝을 내고 돌아간 텃밭은 황량하고 처참하다. 기진맥진 풀기 없이 누렇게 뜬 얼굴로 늘어져 있다. 겨울에서 새싹이 나오기 전 봄의 얼굴은 참으로 볼품이 없다. 나는 처참하게 말라버린 고춧대와 비닐을 걷어내고 검불을 긁어냈다. 머리를 깎고 목욕을 시켜 놓은듯 깔끔해졌다. 봄의 표정을 본 것 같다. 무엇인가 심고 싶은 마음이 생겨 즐겁다. 

도시의 봄은 거리가 산뜻해지고 사람들의 생활은 분주해진다. 학생들은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어른들도 차려입고 밖으로 나가는 일이 많아졌다. 바쁘다. 그러나 그럭실엔 아무런 수런거림이 없다. 조용하고 적막하다. 그럭실엔 봄다운 것이 없는듯 하다. 

나는 여기 낡고, 늙어서 볼품없는 그럭실에서 다시 내 인생의 봄날을 찾았다. 무엇을 심을까 밭에 금을 긋는다. 상추, 오이, 쑥갓, 찾아오는 지인들 손에 몇 개씩 들려 보낼 수 있는 아삭이 고추와 방울토마토도 심어야 하고 감자, 고구마, 도라지 등등 어림잡아 20종류는 심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진짜 심고 싶은 씨앗이 있다. 한 세평쯤 심고 가꾸며 맛있게 먹고 싶은 글의 씨앗이다. 글의 싹이 잘 자라도록 정성들여 흙을 만지는 마음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여낙낙하게 살아갈 것이다. 나는 문우에게 얼굴도 안 되고 몸매도 안 되고 성격도 나쁜 나에게도 드디어 봄이 왔다고 전화를 했다. 어디서 찾았느냐고? 그럭실에 와 보니 봄이 있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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