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다가서야 보이는 것들
가까이 다가서야 보이는 것들
  • 임성재 기자
  • 승인 2015.03.10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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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임성재 <칼럼니스트·프리랜서 기자>

며칠 전, 노 화백의 집에 놀러갔다. 대문을 들어서자 전에 보지 못했던 고양이 네 마리가 마당에서 한가로이 햇볕을 쬐고 있었다. 낯선 사람이 들어섰는데 피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한 마리는 현관문을 열자 앞장서서 거실로 들어선다. 언제부터 고양이를 키우셨냐고 물었더니 키우던 고양이가 아니라고 하신다. 이집 저집 떠돌아다니는 고양이인데 먹이를 한두 번 주었더니 찾아오는 횟수가 잦아지고 언제부턴가는 아예 떠날 생각을 안 하더란다. 

고양이를 좋아한 적이 없었고 떠돌아다니는 고양이라 꺼림칙하기도 해서 쫒아낼까도 생각했는데 어린 새끼고양이 두 마리가 안쓰러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터에, 어느 날 덩치가 커다란 검정고양이가 마당에 들어와 먹이를 차지하려하자 어미고양이는 새끼들을 데리고 구석에 숨고 애비고양이가 목덜미를 뜯기면서도 끝까지 싸우는 걸 보고 이 고양이가족을 지켜주기로 하셨단다. 그 후로 사모님은 고양이에 관한 책을 사 보면서 고양이에 대해 공부했고 이제는 한 가족이 되었다. 

화백이 그림을 그릴 때면 종이를 피하여 조심스럽게 거닐며 주위를 맴돌기도 하고 낮잠을 자고 있노라면 살며시 다가와 다리를 턱 걸치고 함께 자기도 한단다. 

고양이에 대해 막연하게 가져왔던 부정적인 이미지가 사라지고 고양이를 사랑하게 된 것은 고양이를 가까이에서 보고 접하였기 때문이다. 고양이가 마당에 찾아오지 않았다면, 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챙겨 주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가까이서 볼 수 없었을 것이고 노부부가 고양이를 좋아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밤하늘에 둥그렇게 떠있는 달의 아름다움은 지구로부터 384,000Km 떨어진 거리 때문이다. 밤하늘을 반짝이며 수놓는 별들의 유희는 지구로부터 몇 광년 떨어진 거리가 가져다주는 환상이다. 달과 별은 가까이 가서보면 흙먼지와 바위로 뒤덮인 황무지 같은 운석에 불과하다. 달과 별처럼 멀리 떨어져 있어야 아름답고 더 그리워지는 것들이 있다. 외국에 나가서 느끼는 애국심, 돌아가신 후에야 알게 되는 부모님의 사랑, 누군가를 멀리 떠나보내고 나서 밀려오는 그리움 같은 것이 아닐까. 그러나 노 화백부부의 고양이 사랑처럼 가까이 다가가야만, 편견을 걷어 내야만 보이는 것들도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들도 그럴 것이다. 

국민 복지를 두고 정부를 비롯하여 여, 야가 모두 제각각의 처방을 내놓지만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절망하며 세상을 등지는 국민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연일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한다. 

현장으로 다가가지 않고 책상 앞에서 서류로 만들어내는 탁상정책이 빚어내는 참사이다. 한번만 방문해보고 실상을 점검해보았다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일들이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자식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노인들의 딱한 사정도 그런 예이다. 핑계는 법을 악용하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면 얼마든지 파악할 수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편견을 걷어내고 그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할 때 정확한 법안과 정책이 세워질 것이다.

오늘로 329일째를 맞는 세월호 대책도 그렇다. 자식을 잃은 유가족과 시신조차 찾지 못한 실종자가족들에게 한 걸음만 다가간다면, 그들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낀다면 비용을 핑계로 세월호를 인양하는 문제를 이렇게 미뤄 두지는 않을 것이다. 

대통령은 소통을 강조한다. 스스로는 소통의 대통령이라고 하는데 국민은 불통이라고 느끼는 것은 말로만 소통하기 때문이다. 소통은 담장 안에서 탁상공론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벽을 넘어 세상으로 나오고 소통하려는 대상에게 깊숙이 다가갈 때 진정한 소통이 이뤄지는 것이다. 먼 거리에서 바라보는 환상을 걷어내고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는 정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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