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집 그녀
앞집 그녀
  • 안희자 <수필가>
  • 승인 2015.03.10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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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안희자 <수필가>

창밖이 소란하다. 건너편 아파트에 이삿짐이 부려진다. 그 풍경 사이로 그녀의 얼굴이 겹친다. 

이곳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까지 이십여 년을 그녀와 같은 동네에 살았다. 동네 길목에서 만나면 반가운 얼굴로 서로 안부를 묻고는 했다.

곁에서 본 그녀는 행복해 보였다. 미모뿐 아니라 집안 환경도 남부럽지 않게 갖췄다. 그녀는 활달하진 않았지만, 성품이 온화해서 가끔은 그녀와 차 한 잔 마시며 수다를 떨거나 함께 쇼핑도 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또 나와 같은 나이인데다 또래의 자녀를 둔 부모로서 서로 소통할 수 있어 좋았다.

그런데 언제부턴지 그녀의 눈빛은 차가워졌다. 어쩌다 집 앞이나 동네 마트에서 만나면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당황하며 몸을 피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당혹스러웠다.

어느 날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차 한 잔 마시자고 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싸늘했다.

“나, 혼자 있고 싶어요.”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대문을 쾅 닫고는 들어가는 게 아닌가. 혹여 내가 그녀에게 오해 살만한 일을 했던 것일까. 괜스레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았다. 그 후로는 나도 그녀와 마주치는 것이 꺼려졌다. 한동안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그즈음 그녀의 낯선 행동은 날이 갈수록 두드러졌고 예전 모습도 온데간데없었다. 어떤 날은 빗질도 안 한 듯 헝클어진 모습으로 동네 마트에 나타나기도 하고, 때론 남루한 옷차림으로 하릴없이 동네를 배회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가끔은 이층 난간에 서서 하염없이 먼 하늘을 쳐다보는데, 그런 그녀 모습은 마치 가을 빈 들녘의 허수아비 같았다.

알고 보니 그녀는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했다. 내 마음이 흔들렸다. 그녀의 눈빛이 왜 차가워졌는지, 왜 나를 멀리하려 했는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아마도 가슴속에 쌓아둔 그녀만의 비밀한 아픔이 있었나 보다.

나 또한 삶이 막막하고 힘든 역경에 처했을 때 지인들과의 관계를 꺼리고 가슴앓이 하지 않았던가. 그녀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한 내 얕은 생각에 그만 얼굴이 뜨거워졌다. 아마 그녀는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을 애타게 그리워했으리라. 

언젠가 집 앞 공원 벤치에서 그녀가 내게 던진 말 한마디가 아직도 귓전을 서성거린다. 그녀는 몹시 슬픈 표정으로 몸 아픈 것보다 더 힘든 건 마음 아픈 거라 했다. 하지만, 그때 난 그녀 마음을 읽지 못했었다.

그해 봄 그곳을 떠나오던 날도 그녀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내 마음은 그녀가 살고 있는 이층에 머물고 있었다. 그녀를 생각하면 이 봄날이 가볍지만은 않다. 지금 그녀는 어떤 마음으로 봄을 열고 있을까? 

그녀가 세상의 외로움과 고통의 그늘에서 훌훌 털고 벗어나길 바란다. 사는 것이 희비(喜悲)의 연속이라지만 기쁨도 슬픔도 어찌 영원하랴. 그리 보면 인간의 삶도 자연과 같다. 모진 겨울이 지나면 따스한 봄이 오고, 꽃피면 시들어 떨어지는 날도 있지 않은가. 그녀의 고통도 언젠가는 지나가는 것이려니. 

다시 그녀를 만난다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세상살이 마음먹기 나름이지요.”

그녀의 고운 미소가 그리워지는 삼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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