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말하는 소리에 무릎 꿇고
몸이 말하는 소리에 무릎 꿇고
  • 이영숙 <시인>
  • 승인 2015.03.0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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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영숙 <시인>

봄이 오는 소리 들리니? 가지마다 입봉 맺혔는데 우리 마중 나갈까?

이불을 두 채나 뒤집어쓰고 끙끙 앓는데 여고 1년 선배한테 카톡이 왔다. 지난 가을에 보았으니 올들어 처음 갖는 만남이다.

한정식 가득한 상차림을 눈앞에 두고도 돌솥 숭늉만 뜨는데 억지로라도 먹으라며 이것저것 앞 접시로 옮긴다. 밥상을 같이한 선배를 생각해서 꾸역꾸역 몇 숟가락을 들었다. 요즘 두달간 지속되는 몸살로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돼가는 중이었다. 몸이 호통치는 소리에 놀라 무릎 꿇고 등한시했던 몸의 채찍을 엄숙히 맞는 중이다. 

식사 후 용정동 산림공원으로 오르는데 선배가 심오한 말을 꺼낸다.

“나무와 집을 그리라면 뭘 먼저 그릴 것 같아?”

“집을 그린 후에 집에 맞게 나무를 배치할 것 같은데?”

선배는 예상했던 답을 들어서인지 피식 웃는다. 그림에서 집은 가족이고 나무는 자신인데 그만큼 내가 평상시 가족과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혹사하며 살고 있노라 질책했다. 그래서 이젠 몸이 자신을 돌보라며 신호를 보내는 중이니 몸이 말하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일이 잘돼야 가족과 남도 잘 사랑하게 된다고.

낙타처럼 아무 짐이나 지려고 무릎 꿇지 말고 경우가 아닌 상황에서는 사자처럼 으르렁거리며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돼 보라며 손을 마주 잡았다.

선배는 모 대학에서 작문과 표현을 강의 중이다. 우리는 한때 대학원 같은과 동기생으로 만학의 불타는 향학열을 보였던 타칭 학구파들이다. 만나면 늘 교육 이야기며 책 이야기다. 요즘 소통이 화두인데 소통 중에서 가장 큰 소통이 뭔 것 같으냐고 묻는다. 뻔한 답안인 ‘자신과의 소통’이라고 말해놓고 이율배반적인 내 모습을 발견한다. 그야말로 생의 한가운데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참 잘 살아왔노라고 자위했는데 몸이 그게 아니니 잘 살지만은 않은 것 같다. 시가지가 보이는 밭 한가운데 냉이가 보여서 흙 위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콩 꼬투리를 잘라 쏙 하고 올라온 냉이를 캤다. 손에 감기는 흙과 냉이 향이 상처난 몸속으로 파고든다.

내친김에 일어나 양팔을 벌리고 가슴을 편 후 큰소리로 외쳤다.

“영숙아, 사랑해! 이젠 너 자신이 말하는 소리를 들어봐. 몸이 말하고 있잖니, 날 사랑해 달라고!”

선배는 냉이를 다듬으면서 그 상태로 코로 숨을 네 번 들이쉰 다음 입으로 다섯 번 내 쉬라고 주문했다. 몇 번 연거푸 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공기와 생각이 봄의 싹처럼 몸 안 구석구석 날아든다. 

나와의 소통으로 새롭게 포맷하고 내려와 카페에서 진한 아메리카노 한잔씩을 마셨다. 커피잔을 마주 붙이더니 무엇이 연상되느냐고 묻는다. 전경과 배경의 모양이 나타나는 ‘루빈의 컵’이다. 전경으로 보느냐 배경으로 보느냐에 따라 유리잔과 키스장면으로 보이는 심리 그림이다.

지금까지 가족과 사회에서 가르치는 일에 목숨 바치듯 철저한 배경으로 살았다면 이제는 자신을 앞으로 내세우고 전경으로 살아보라며 자신의 앞으로 두 손을 가져다 놓고 꼭꼭 주물러 준다. 용정동 산림공원에서 보았던 쭉 솟은 나무처럼. 내 안의 소리를 들으며 오롯한 자신으로 자유롭게 솟아 보라고. 

생의 한가운데서 새삼 소중한 것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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