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그리고 이른
늦은 그리고 이른
  •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 승인 2015.03.05 19:1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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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희숙 <수필가·산남유치원교사>

새 학기다. 새롭다는 것은 긴장과 기대와 설렘과 두려움을 준다. 올해는 7세 반이다. 일년 만이다. 아이들과 마주하는 것이. 한 해 동안 학습연구년제 특별연수로 파견근무를 하느라 아이들의 재잘거림 속에서 멀어졌었다. 연수와 연구활동에 파묻혀 잊고 지내던 아이들과 이제 함께 웃고 뛰놀며 생활해야 한다. 내가 맡을 교실을 둘러보고 이것저것 환경을 정비한다. 게시판도 꾸미고 영역 구성도 교실의 물리적 환경에 맞추어 바꾸어 본다. 물이 가까운 곳에 미술영역을 배치하고 햇살이 따사롭게 드는 곳에 언어영역을 배치해본다. 역할놀이영역과 쌓기놀이영역은 인접하게 배치하여 서로 영역을 넘나들며 상호 작용하면서 놀이가 확장될 수 있도록 배치해본다. 과학영역에는 아이들이 관찰할 꽃기린과 베고니아도 갖다 놓는다. 사물함에 이름도 달아주고 신발장의 이름도 예쁜 컷으로 만들어 본다. 아이들이 읽을 책도 생활주제에 맞게 골라서 책꽂이에 꼽아 놓고 교구들도 3월의 주제에 맞게 세팅해 놓는다. 유치원 일은 참 더디다. 오리고 자르고 붙이고 별로 티도 안 나면서 시간을 앙큼하게 잡아먹는 도깨비 같다. 그래도 아이들이 고운 환경에서 웃을 수 있기를 바라며 손놀림을 빨리해 본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니 오늘도 늦은 퇴근은 자명하다.

국문학을 전공했던 내가 어쩌다가 유치원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파묻혀 살게 되었는지 인생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대학을 들어갈 당시만 해도 유아교육에는 관심도 없었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유아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남들보다 십년은 늦은 유아교육과 학생이 되었다. 당연히 남들보다 십 년 늦은 임용을 거쳐서 올해로 십이년째 유치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십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아이들을 좋아하는 마음만은 변함이 없다. 승강기에서 아이들을 보면 예뻐서 말을 붙이는 내게 아들은 그러지말라고 한다. 아무 애들한테나 그렇게 말 걸면 유괴범인 줄 안다고. 그러나 아이들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내일은 입학식이다. 교실을 마지막으로 점검한다. 아이들의 이름표가 있는지, 안내장의 수와 아이들의 수가 일치하는지, 이름이 잘못 기록된 아이는 없는지, 청소 상태는 양호한지, 원복과 가방이 새로 왔는지 하나하나 점검을 하고 교실을 나오는데도 뭔가 빠진 것 같은 불안한 마음에 자꾸만 뒤돌아보며 멈칫거리게 된다.

집에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는다. 코에서 뭔가가 흐른다. 순간적으로 손등으로 훔쳤다. 코피다. 오랜만에 흘려보는 액체다. 콧물인 줄 알았다가 손등에 묻은 붉은 자국을 확인하자 갑자기 피로감이 풀리며 기분이 상쾌해진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피를 흘리며 그들을 맞을 준비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잠자리에 들기 전 생각을 정리해 본다. 내일 아이들에게 할 인사말과 활동들, 우리 반 이름이 갖는 의미 소개, 그리고 내일 입고 갈 옷도 미리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올 한해 내게 다가온 소중한 인연을 아름답게 가꾸어야겠다. 3월의 입학식 전날처럼 늘 준비하는 마음으로 두근거리며 매 순간을 살고 싶다. 창밖의 어둠을 보며 늦은 잠을, 아니 이른 새벽잠을 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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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8098 2015-04-06 00:15:44
ㅋㅋ 애들이 이뻐서 그런구야

김준혁 2015-03-30 05:46:09
장난기 발동해서 말거는 줄 알았는데 ㅋㅋ 이제 승강기에서 애들한테 말 걸어도 뭐라 안할게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