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201>
궁보무사 <201>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10.30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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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경처녀의 숨은 사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두사람이 혼례를 치르는 것이"

그러나 가경처녀의 아버님은 그 후유증이 너무 심했던 탓인지 시름시름 계속 앓기 시작하더니 누운 자리에서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가경처녀는 본업인 사냥은 아예 생각도 못한 채 하루 종일 누워 계시는 아버님 병구완을 하랴 집안 살림을 꾸려나가랴 정말로 눈코 뜰새도 없이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다.

그래도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랄까

절벽 아래에서 다친 아버님을 함께 모시고 왔던 그 총각이 그날 이후로 얼떨결에 한집에 머물게 되었고, 그는 이것저것 가경처녀를 위해 집안일을 도와주는 건 물론 가끔씩 귀한 약초나 산삼 같은 걸 캐가지고 와서 정성껏 그녀 아버님을 위해 달여 드리곤 하였다.

그래도 그녀 아버님의 병이 조금도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 총각은 가경처녀에게 아버님을 모시고 저 멀리 한벌성에 있는 용한 의원을 찾아가보자고 말했다.

가경처녀는 그의 말이 두 귀에 솔깃하게 들리긴 했지만,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그녀 아버님은 두 사람의 이런 호의를 완강히 거부하였다.

"나는 사냥질만 40여년 넘게 해온 사람이다. 내가 먹고 살기 위해 사냥을 했다지만, 그간 나로 인하여 고통받고 죽어간 동물들이 그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냥 내버려두어라. 나 이제 살만큼 살았고 또 죽은 동물들의 한(恨)을 풀어줄 때도 되었으니 이대로 조용히 누워 지내다가 눈을 감을란다."

그리고 그녀 아버님은 두 사람을 나란히 자기 눈앞에 앉혀놓고 딸에게 먼저 물어보았다.

"얘야! 솔직히 말해보려무나. 너 남촌(약초 캐는 총각의 이름)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버님의 물음에 가경처녀는 아무 대답도 못 한 채 귀 밑까지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그리고, 남촌! 자네 내 딸을 어떻게 생각하나"

그러자 남촌은 얼굴에 환한 미소를 가득 머금으며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대답했다.

"무척 참하고 예쁜 처녀라고 생각하고 있습지요."

"그래, 맞았어! 내가 내 딸이라서 그러는 게 아니다만, 사실 우리 가경이는 어디에 내놔도 인물이며 착한 마음씨 등등이 결코 빠지지 않을 걸세. 자, 어때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두 사람이 간략하게나마 혼례를 치르는 것이"

"어머머! 아버지! 그, 그만 하세요."

부끄러움을 더 이상 참지 못하겠던지 가경처녀는 새빨갛게 물든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재빨리 밖으로 뛰어나가 버렸다.

남촌은 입이 귀밑에까지 짝 째어져 가지고 신이 나서 그녀 아버님께 다시 말씀드렸다.

"무엇보다도 어르신께서 빨리 나으셔야지요. 저희들의 혼인이야 언제든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참, 그런데 지난 번에 제가 짜드린 산삼즙이 어떻습니까 어르신께 효험이 좀 있는지요"

"으응. 그걸 한번 마시고났더니 원기가 한결 샘솟는 거 같아. 고마우이."

"아, 그럼 제가 그걸 좀 더 많이 구해다 드려야겠네요."

어쨌든 바로 그 순간부터 남촌 총각의 쫙 벌어졌던 입이 내내 다물어질 줄 몰랐다.

하지만 바로 그날 밤,

이들에게 엄청난 불행이 별안간 덮치게 될 줄 그 누가 감히 짐작이나 했겠는가.

아직도 다친 상처가 낫지를 않아 몹시 고통스러워하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든 아버님을 보고 방문을 막 나서던 가경처녀.

이때, 갑자기 어느 누가 뒤에서 달려들어 그녀의 봉긋한 두 젖가슴을 단숨에 두 손으로 움켜잡으려 하였다.

"아아앗!"

가경처녀는 별안간 나타난 정체불명의 치한을 향해 거의 본능적으로 몸을 피하며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내리 쭉 뻗었다. 그러자 그 주먹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치한은 그대로 쿵 소리를 내며 저만치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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