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봄맞이
  • 이수안 <수필가>
  • 승인 2015.03.01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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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수안 <수필가>

황사현상이 잦다. 기록적인 황사로 미세먼지 농도가 짙으니 외출을 자제하라는 예보가 나왔었다. 겨우 이삼일 잦아들어 마음 좀 편하게 일하나 싶었는데 내일 또 황사가 밀려온다는 예보다. 봄은 역시 쉽사리 오지 않을 모양이다. 

날씨가 좋은 오늘 중으로 포도나무 전지를 마치기 위해 나는 부지런히 가위질을 한다. 사실 이렇게 마음이 급해지는 이유는 따로 있다. 복숭아나무 밭으로 빨리 가고 싶어서다. 작년에 나는 포도밭의 절반도 넘는 면적을 복숭아나무로 작목 전환을 했다. 

나는 30년간 포도농사만 지어왔다. 8년 전 음성에 새 과수원을 만들 때도 내가 좋아하는 포도나무만 심었다. 그 후로도 해마다 4월이면 온통 잔치를 이루는 복사꽃 물결을 보면서도 복숭아나무를 심을 생각은 없었다. 그런 나의 외골수 성격을 허문 것은 수입 과일이었다. 

포도농사는 한-미 FTA 협정이 발효된 뒤로 부쩍 고단해졌다. 한-칠레 FTA 때와는 달리 상황이 급변했다. 사시사철 포도를 비롯한 다양한 수입 과일이 홍수를 이루면서 국내산 포도의 소비가 급감했다. 적정 수입을 보장하기 어려운 가격이 두어해 지속되었다. 간당간당하게 버텨온 가정 경제도 어려움에 부닥칠 것이 확연하게 예측되었다. 많은 고민 끝에 포도나무를 자르기로 했다. 포도나무를 자른 자리에는 지역특화작목이면서 포도농사보다 다소 일이 수월한 복숭아나무를 심기로 했다. 

포도나무를 자를 때의 아픔은 아직도 어제인 듯 생생하다. 비장한 마음으로 톱을 들고 포도나무 앞에 섰지만 가슴이 쿵쾅거렸다. 한 그루, 한 그루 포도나무를 잘라내는데 다리에 힘이 풀렸다. 일을 계속할 수 없었다. 

추위에 한참 쭈그리고 앉았지만 묘책이 없었다. 어차피 감당해야 할 일이었다. 마음 따위는 꺼내서 밭 귀퉁이에 세워두자고 결심하고 다시 포도나무 앞에 섰다. 그리고는 생각 같은 건 없는 사람처럼 죽어라 포도나무만 잘랐다. 

그런데 마지막 나무를 자르고 허리를 펴는 순간이었다. 와락 뜨거운 감정이 솟구치더니 눈물이 쏟아졌다. 억울하고, 아깝고,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뒤죽박죽이었다. 포도밭 귀퉁이에 얌전히 세워둔 감정이라는 녀석이 어느새 내 안으로 달려든 게 분명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잘 못 잤다. 아침이 되니 머리에 열이 심하고 으슬으슬 추웠다. 겨우내 잘 보내놓고도 꽃샘추위가 올 무렵이면 연중행사처럼 감기가 들고는 했다. 어차피 한 번은 치러야 할 연중행사였거늘 그 많은 나무를 자른 죄책감을 덜고 싶었던 나는 폐렴까지 가는 감기를 기꺼운 마음으로 앓았다.

그렇게 포도나무를 캐낸 자리에 복숭아나무를 심은 것이다. 포도나무에 쏟던 마음으로 어린 복숭아나무를 가꾸었다. 대견하게도 일년 만에 벌써 어엿한 복숭아밭의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봄이 완연해지려면 황사현상뿐만 아니라 꽃샘추위도 몇 차례 더 있을 것이다. 워낙 이상기후가 심하다 보니 근년에 있었던 4월의 눈보라가 또 올지도 모른다는 염려도 된다. 

순탄하지 않은 나의 농사. 미세먼지 농도가 짙은 요즈음 날씨만큼이나 불투명하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럴지라도 나는 온전한 나의 봄을 맞이하기 위해 포도나무도, 복숭아나무도 열심히 가꿀 참이다. 좋아하고, 잘하는 것에 마음을 다하다 보면 마침내는 나의 농사에도 봄날이 오고야 말지 않겠는가.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겨울이 미적거려도 봄은 기어코 오고야 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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