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성의 신화속의 날씨 <41>
반기성의 신화속의 날씨 <41>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0.2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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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홍수 신화
물 한방울의 자비로 살아남은 복희와 여와

'그는 점(占)에 쓰이는 '8괘(卦)'를 만들어서 문자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짐승을 길들였고, 백성들에게 음식을 익혀 먹는 법과 그물로 낚시하는 법, 철로 만든 무기로 사냥하는 법 등을 가르쳤다. 결혼을 제도화하고 하늘의 신에게 첫 야외제사를 드렸다. 대홍수 후 살아남아 3皇(황)의 첫 머리에 꼽히는 중국의 전설상의 제왕인 그는 복희 또는 포희라고 불린다. 2000년 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석판에는 대홍수 때 같이 살아남은 누이인 여와가 함께 그려져 있다.'

세계 어느 문명권에나 대홍수 신화는 존재한다. 그리스, 로마의 홍수나 바벨론의 홍수설화 등 대부분의 신화에서 대홍수는 인간에 대한 신들의 노여움 때문에 발생했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중국의 대홍수 신화는 신들의 싸움 때문에 일어났다.

까마득한 옛날, 땅에는 아직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다. 높은 산과 울창한 숲, 맑은 강물과 푸른 바다는 아름답기 만했다. 한 용감한 남신(男神)이 아들과 딸을 데리고 땅에 내려와 살기 시작한 어느 날, 하늘에 먹구름이 덮이면서 바람과 함께 천둥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폭풍은 땅을 휩쓸 기세였다. 이윽고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곳곳에 벼락이 떨어지고, 폭풍은 산과 숲과 바다를 뒤흔들었다. 곧 멈추려니 했던 비도 며칠이 지나도록 그칠 줄 몰랐다.

"이것은 자연현상이 아니라, 분명 번개 신(雷神)의 장난일 것이다. 저번에 나에게 혼이 났던 앙갚음을 이렇게 하는구나. 그러나 이를 어쩐다 아무런 무기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니."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결코 물러설 수 없었다. 남신은 쇠망태기 하나를 엮어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에는 급히 만든 쇠갈퀴를 들고 밖으로 나가 번개 신을 불렀다.

"번개 신아! 비겁하게 숨어서 장난치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싸우자, 어서 나와라!"

과연 번개의 신이었다. 먹구름을 헤치고 나오자마자 번개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도끼로 남신의 가슴을 찍었다. 번개 신의 공격을 예상했던 남신은 살짝 비키면서 손에 들고 있던 쇠갈퀴로 번개신의 허리를 낚아챘다. 동시에 다른 한 손으로는 번개 신을 쇠망태기 속으로 집어넣고는 뚜껑을 닫아버렸다. 번개 신이 쇠망태기 속에 갇히자마자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아름다운 햇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얘들아, 잘 봐라. 이 망태기 속에 든 자가 천둥 번개와 대홍수로 우리를 죽이려 했던 번개 신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이 자에게 물 한 모금 주어서는 안된다."

"물을 조금이라도 먹어야 힘을 내서 쇠망태기를 빠져 나갈 수 있을 텐데…, 저 아이들을 어떻게든 구슬려 물을 구해야겠다."

번개 신은 쇠망태기 옆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을 구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부터 누이동생의 마음이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교활한 번개 신은 누이동생에게 더욱 애달픈 목소리로 애원을 했다.

"예쁜 아가야, 물 한모금도 주지 못하겠다니 서운하다만, 정 그렇다면 저기 냄비를 닦는 털끝에 물 한 방울만 축여 내게 줄 수 없겠니"

불쌍해 보이는 번개 신에게 물 한 모금도 아니고 털끝에 물 한 방울 적셔 주는데 무슨 일이 있겠나 싶어 남매는 털에 적신 물방울을 번개 신의 바싹 탄 입술에 발라 주었다. 그 순간 천둥소리와 함께 번갯불이 일더니 번개 신이 쇠망태기를 부수고 뛰쳐나왔다.

"어쨌든 너희들은 내 생명의 은인이다. 내가 이빨을 하나 뽑아줄테니 이빨을 땅에 묻어라. 곧 싹이 나고 자라서 커다란 열매가 열릴 것이다. 만일 재난이 있을 때 열매 속에 들어가 숨으면 너희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밖에 나갔다 돌아온 남신은 번개 신이 도망친 것을 알고 망연자실했다. 아이들을 혼내봐야 소용없는 노릇이었다. 남신은 번개 신의 대홍수에 대비해 무쇠로 튼튼하고 큰 배를 만들었다. 며칠이 지나자 하늘이 심상치않게 변하기 시작했다. 검은 먹구름이 하늘을 덮으며 몰려오자 온 땅이 캄캄해졌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폭우가 쏟아지면서 산이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남신은 무쇠로 만든 배를 띄우고 아이들을 불렀다. 그때 큰 파도가 밀려오더니 아이들을 번개 신의 이빨에서 자라난 열매로 밀어 넣었다.

번개 신과의 싸움에서 도저히 승산이 없자 남신은 하늘나라 황제에게 올라가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고했다. 황제는 즉시 번개 신의 횡포를 멈추게 하고, 물의 신에게 명하여 땅위의 물을 모두 빠지게 했다. 무쇠 배에 타고 있던 남신은 물이 갑자기 빠지자 땅에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러나 아이들이 타고 있던 열매는 말랑말랑해서 땅에 떨어졌어도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중국의 대홍수 신화 때 살아남은 남매의 이름이 서두에 인용했던 바로 복희(伏羲)와 여와이다.

"폭력, 강간, 온갖 더러운 짓들만 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볼 수가 없구나. 내가 땅위에서 악한 인간들을 물로 쓸어버릴 것이다. 그러나 착하고 의로운 노아와 네 가족은 살릴 것이다."(창세기 613, 71)

성경을 비롯한 세계의 대홍수 신화에서 착하고 의로운 사람들이 선택받아 살아남은 것처럼, 중국의 대홍수 신화에서는 물 한 방울의 자비를 베푼 남매가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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