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易地思之)
역지사지(易地思之)
  • 신금철 <수필가>
  • 승인 2015.02.23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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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금철 <수필가>

나는 어릴 적 평산 신씨(平山 申氏) 집성촌에 살았다. 면 소재지인 우리 마을의 정확한 가구 수와 사람 수를 기억하진 못하지만, 짐작으로 가구의 70% 이상이 平山 申氏 이었던 것 같다. 옆집도 앞집도 뒷집도 아저씨 아주머니 조카 동생이었고 나이는 어렸지만, 항렬이 높은 나에게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께서 아줌마라고 부를 때마다 계면쩍었던 게 생각난다.

이렇듯 마을 대부분이 일가친척들이었기에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생기면 내일처럼 서로 돕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었다. 이런 마을의 분위기로 타성(他姓)을 가진 몇 가구의 사람들까지도 자연스럽게 함께 어울리게 되어 다소 언짢은 일이 생기더라도 서로 너그럽게 이해하고 도와주었기에 이웃 간에 큰 다툼 없이 평화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우리 집과 옆집 사이엔 담이 없었다. 그리 가까운 친척은 아니었지만 담을 헐고 공동 우물을 판 후엔 한 집이 되어버려 대문까지도 양쪽 집이 함께 사용할 정도로 사이좋게 지냈다.

각종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폭력이 난무하며 부모 자식 간에도 아파트 비밀번호를 감추고 사는 삭막한 요즈음엔 어림없는 일이겠지만 내 어린 시절엔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결혼 후 시부모님과 함께 살다 살림을 난 후 처음 주택을 사서 이사를 했을 때만 해도 이웃과 잘 어울려 지냈다. 함께 사신 친정어머니께서는 앞집 할머니, 옆집의 젊은 새댁과 어울려 맛있는 음식도 함께 해 먹고 아이들도 함께 어울려 형제처럼 지냈으며, 나도 시간이 날 때는 그들과 어울려 가족 나들이도 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이렇듯 이웃과 어울려 살다 큰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학교 근처의 아파트로 집을 옮기며 이웃사촌과 함께 어울리는 기쁨은 끝났다.

아파트는 주택과 달리 집에 고장이나 파손으로 손 볼 걱정 없고 눈이 많이 와도 치울 걱정 없이 따뜻한 난방과 시원한 냉방에 살기 좋았지만, 위층에 사는 분이 사업을 하는 분이어서 자주 친목모임을 하는 바람에 음악 소리와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신경이 쓰였다. 그때만 해도 아파트의 방음이 시원치 않은 탓도 있겠지만 참을 만큼 참다 힘든 사정을 이야기한 후로 조심은 하였지만, 이웃과는 여전히 서먹서먹하여 사이좋은 이웃으로 지내지 못하였다.

다음에 이사한 아파트는 다행히 위층에 연세 높으신 두 분이 사셔서 조용했다. 옆 라인에 사는 성당 교우가 층간 소음 문제로 이사까지 생각하고 직장동료가 술에 취한 아랫집 주인과 층간소음 문제로 말다툼하다 형사문제로 골치를 앓는 모습을 보며 층간소음의 심각성을 실감했다. 

아파트를 다시 옮기며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층간소음 때문에 고민이 생겼다. 직장에 다니는 며느리 대신에 손자 손녀를 돌보게 되었는데 남매인 녀석들이 콩콩거리며 뛰어서 걱정되었다. 아무리 조심을 시켜도 아이들을 말릴 수가 없었다. 

아파트 층간소음 문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층간 소음의 가해자도 피해자도 똑같이 마음이 괴로운 것을 많은 이들이 경험하였으리라 생각한다.

살다 보면 사람은 누구나 정도의 차가 있을 뿐 알게 모르게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이 될 수 있다. 옛날처럼 대문을 활짝 열고 살기엔 현실이 무섭지만 평소 이웃과의 교류로 정을 쌓고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있을 때 함께 나누는 사이라면 층간 소음으로 크게 다투며 문제가 생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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