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청산가자
아이야 청산가자
  • 전영순 <문학평론가·수필가>
  • 승인 2015.02.22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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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스크래치

전영순 <문학평론가·수필가>

“현실은 영화와 다르다”는 콜린 퍼스가 나오는 영화 킹스맨을 봤다. 약 두시간 동안 긴장감 넘치는 장면들로 스크린 속에 푹 빠졌다 나왔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계도 어쩌면 판타지 세계를 드나드는 시공간 선상에 살고 있지 않나 싶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아 하나의 스토리텔링을 해보라. 누구나 멋진 영화 한편은 쉽게 만들 수 있을 게다. 잠들기 전 일상을 잠시 생각하면 장자의 화접몽도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도 주체의 일상 속에 스며들어 금오신화 정도는 거뜬히 능가할 것이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이 요즘 현대인에게는 2~3년과 맞먹는 시간이다. 일상과 거리가 있는 강산도 그러한데 눈앞에서 펼쳐지는 변화는 오죽하랴. 격세지감을 느끼며 살고 있는 친정어머니가 며칠전 “세상 참 더럽다”며 불만스럽게 한마디 던지셨다.

내가 자란 동네는 대한민국의 오지 중의 오지다. 세월이 많이 변해도 아직도 옛날 풍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어릴 적 내가 자란 이야기를 하면 도시에서 자란 친구들은 믿어지지 않는다며 설마 한다. 어머니가 던진 서늘한 말도 보통 사람들은 설마 할 것 같다. 그런데 어머니가 개똥이 엄마에게 던진 말이 꼬리를 물고 나를 따라다닌다.

친척 결혼식날 어머니는 개똥이 엄마더러 아무개 댁 “조심해서 내려가시더”하고 평어를 썼다. 그 말이 있기까지는 많이 망설였을 것이다. 인사하고도 못마땅해 돌아서 “세상 참 더럽다” 하셨다. 아무개 댁은 우리 집안일을 도와주던 머슴의 아내다. 당시 우리 동네 집안사람들은 타성(他姓)을 가진 사람들을 명령조나 반말을 했다.

고향을 떠나온 지 수십년이 지났어도 고향에는 몇 몇 일가친척이 지키고 있다. 집안 애경사가 서울에 있어서 집안 타성 할 것 없이 고향사람 모두가 버스를 대절해 왔다. 타성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 집안일에 얼씬도 못했던 예전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 동네에 살던 타성을 가진 사람은 문중의 머슴이거나 굿은 일하던 사람들이다. 그렇게 불리던 개똥아를 아무개 댁으로 호칭하며 평어를 썼으니 기분이 묘했던 모양이다. 세계화 물결 속에 고향사람들의 사고도 많이 변했다. 남아있는 집안들은 속으로는 좀 거시기 하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함께 어울려 동네를 잘 꾸려가고 있다. 어머니가 바라보던 세상 속에 나도 자라 그때 엄마의 나이가 되어 세상을 읽는다.

설날 차례를 지내면서 빈자리를 바라본다. 엉금엉금 기어다니던 손자를 안고 어르시던 아버님은 고인이 되셨고 기어다니던 아들은 성장해 군에 갔다. 차례상을 차려놓고 절하는 자리에 아들의 빈자리가 유난히 크다. 손이 귀한 집안에 장남으로 태어난 내 아들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설날 철책부대에서 보초서느라 자리를 비웠다. 말없이 왔다가 말없이 가는 시간 속에 우리는 무수한 세계를 넘나들며 존재한다. 오늘 나의 흔적들도 바람처럼 밀려간다. 

현실은 영화와 다르다는 킹스맨의 잰틀맨 스파이도 공동체 사회의 인간애를 찾아 투쟁하는 것처럼 4차원 세계를 오가고 있는 오늘날 개인주의가 만연하는 현실 앞에 진정한 인간애가 무엇인지 화제를 던져본다. 아들의 빈자리를 소월이 설정해 놓은 청산이라도 잠시 다녀올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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