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고속철도 서대전역 교훈
호남고속철도 서대전역 교훈
  • 김기원 <시인·문화비평가>
  • 승인 2015.02.09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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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기원 <시인·문화비평가>

한동안 한반도 서쪽벨트가 시끄러웠다. 아니 시끄럽다 못해 서쪽이 두 동강 날 지경이었다.

호남고속철도 서대전역 정차 문제로 호남과 대전·충남이 극한 대립을 했기 때문이다. 

이에 충북의 입장이 난해했다. 

고속철도의 덕목인 속도를 따르자니 대전이 울고, 고속철도를 이용하고 싶은 대전 시민과 수요창출을 원하는 코레일을 따르자니 호남이 울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부고속철도와 호남고속철도 분기역을 갖고 있는 충북도로선 이 문제에 침묵할 수만은 없어 어떤 형태로든 개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전의 요구대로 서대전역 경유로 수정되면 오송역의 위상과 역할에 심대한 손상을 입을 우려가 있어, 충북의 뜻있는 시민단체들이 서대전역 경유 저지를 위한 활동에 들어갔다.

그러자 대전이 심한 불쾌감을 표하며 청주공항 활성화에 협조하지 않겠다느니, 충청권 공조를 파기하겠다는 등의 엄포를 놓기도 했다.

영·충·호 시대를 함께 연 충청권이 서로 얼굴을 붉히며 삿대질을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수도권규제완화 저지와, 국회의원 정수의 제자리 찾기, 청주국제공항 활성화 등 충청권이 똘똘 뭉쳐서 지키고 쟁취해야할 일들이 산적해 있는데 발등에 떨어진 지역이기주의에 함몰된 것이다. 

며칠 전 국토부가 호남선고속철도 원안고수를 발표해 갈등은 조기에 봉합되었으나, 불씨는 남아 있는 형국이다. 

국토부가 고심 끝에 저속철에 반대하는 호남의 손을 들어주면서, 대신 서울과 서대전·계룡·논산·익산을 연결하는 별도의 KTX를 운행하기로 해 대전·충남의 손도 들어준 모양새를 취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번 서대전발 갈등에 큰 교훈이 있다.

그 하나는 충청권공조가 소지역주의 앞에서는 맥없이 붕괴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영·충·호 시대 리더를 자임하던 충북도의 수세적 역할이다. 

충북도가 갈등의 당사자로 링에 올라 파열음을 낼게 아니라, 호남과 대전·충남의 갈등 조정자로서 역할을 했어야 했다.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호남과 대전·충남의 이익충돌의 한가운데 들어가 명분과 실리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대전 시민들도 국가의 기간교통망인 고속철도 KTX의 이점을 활용하고 싶을 것이다. 물론 건설 초기단계에서 용인해놓고 지금에서야 난리냐고 면박을 줄 수도 있지만 역지사지하면 이해되는 부분이 없지 않다.

서울을 빨리 가고 싶은 호남 사람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호남에서도 수도권에서도 대전을 오가는 승객들은 많을 터, 이점을 상기하면 답이 보인다.

승객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코레일로선 이동인구가 많은 대전이야 말로 큰 시장이 아닐 수 없다. 이를 활용해 오송역의 파이를 키우는 전략을 썼어야 했다. 

더욱이 국토부는 고속철도뿐만 아니라, 청주공항 MRO사업을 비롯한 대형 국책사업의 키를 쥔 부처인데, 이번에 우군화 할 좋은 기회를 놓쳐 아쉽다. 서대전역이 주는 교훈은 민·관·정이 힘을 합쳐 충북의 실리를 확장하는 조금주고 크게 받아내는 지혜이다. 

충북 입장에서 보면 KTX가 서대전역에 경유하더라도 오송역에 정차횟수가 늘어나고 환승 등 승객들의 이용편의가 증대된다면 손해 볼 게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유사한 갈등이 발생하면 양 지역 이익의 공통분모를 찾아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교섭력을 극대화했으면 한다. 

청주시와 세종시가 확장 일로에 있다. 양 지역 인구가 대전시 인구에 근접할수록 지역 간 갈등도 많아질 것이다.

충청권 공조가 와해되면 수도권이 쾌재를 부를 터, 상생기조는 공고히 해야 한다.

지역언론도 이점을 상기해 대전·충남과 충북 간의 싸움을 부채질하거나 이간시키는 보도는 가급적 자제했으면 한다.

세상에 갈등 없는 발전은 없다. 멀리 보고 의연하게 대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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