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200>
궁보무사 <200>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0.2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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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실수를 하는 바람에 귀중한 당신을 죽게 만든거라구요"
6. 피는 피로 갚는다.

그 다음 가경처녀는 제일 작은 봉분 앞으로 다가가 술 한 잔을 가득 부어 그 주위에 또 골고루 흩뿌려댔다. 그리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를 내어 조용히 읊조리듯 이렇게 말하였다.

"누렁아! 지금도 네 그 우렁찬 울음소리가 내 두 귀에 또렷이 들려오는 듯하구나. 너는 비록 동물이었지만, 나와 피를 함께 나눈 형제나 다름없었어. 너는 오로지 우리 가족만을 위하여 모든 충성을 바치지 않았니 지극히 착하고 충성스럽고 용맹스럽던 누렁아! 주인인 내가 순간적인 실수로 인하여 너를 지켜주지 못해 무척 미안하고 부끄럽구나. 누렁아! 언젠가 나도 죽음의 세상으로 가서 너를 만나겠지 그러면 그때 나랑 너랑 살아 생전 서로 못다한 얘기 모두 나누기로 하자꾸나. 누렁아! 이제 잠을 자다 놀라 깨어 크게 짖을 일도 없을 테고, 어느 누가 몰래 와서 주인인 나를 해코지할까 두려워 항상 나를 불안하게 지내는 일도 없을 것이니 그냥 누워서 편히 쉬려무나. 자, 누나가 따라주는 술이니 맛있게 마시고 흠뻑 취하렴. 이 누나가 내년 이맘때쯤 잊지 않고 다시 찾아올게."

맨 마지막으로 가경처녀는 중간 크기쯤 되는 가운데 봉분 앞으로 다가가서 역시 술잔에 술을 가득 따라 부운 후 그것을 무덤가 주위에 골고루 또 뿌려댔다. 매일매일 무덤가를 손질해 온 탓인지 세 개의 무덤은 봉분 크기만 서로 다를 뿐 잡풀 하나 없이 예쁜 이불처럼 잔디가 곱게 덮여 있었다.

중간 크기의 무덤 위에 골고루 술을 뿌려대던 가경처녀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나는지 쿡 하고 울음을 터뜨리려 했지만, 그러나 어금니를 질끈 깨물며 억지로 참아내는 듯 하였다.

그리고 어느 누구에게 하소연이라도 하려는 듯, 아니 어느 누가 한 번 들어보라는 듯 가경 처녀는 나지막한 목소리를 내어 이렇게 다시 중얼거렸다.

"여보! 우리가 비록 몸을 많이 섞지 못했고 묘한 일 때문에 변변히 예도 올리지 못했지만, 그러나 당신은 영원히 제 남편이에요. 여보! 따지고 보면 모두다 제 잘못이지요 제가 순간 실수를 하는 바람에 귀중한 당신을 죽게 만든 거라구요. 으흑흑흑."

가경처녀는 갑자기 모든 설움이 한꺼번에 북받쳐 오르는지 마침내 참지 못하고 두 어깨를 들먹거려가며 엉엉 울어대기 시작했다.

"여보! 여보! 여보!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제가 잘못을."

그러다가 가경처녀는 무슨 생각이 문득 떠올랐는지 비워진 술잔에 술을 가득 또 채워넣었다. 그리고는 남들이 쳐다보건말건 (사실 깊은 산속인지라 누가 쳐다볼 사람도 없지만) 웃옷을 풀어헤치더니 희뿌연 자기 두 젖가슴을 밖으로 끄집어내었다. 아기도 낳아본 적이 없는 처녀의 그것치고는 상당히 크고 튼실해 보이는 편이었다.

가경처녀는 다짜고짜 그 술잔 안에 연분홍빛 조그만 자기 두 유두(乳頭)를 번갈아가며 푹푹 담았다가 끄집어냈다. 그리고 그 술잔을 자기 남편 무덤가에 골고루 다시 뿌려주며 그녀는 이렇게 넋두리 하듯 또다시 중얼거렸다.

"자! 마시세요. 실컷 마시라고요. 당신이 그토록 좋아했던 술이 아니에요"

그녀가 여자로서의 부끄러움을 잠시 망각한 채 지금 이런 엉뚱한 짓을 하는 데에는 남다른 애틋한 사연이 숨어 있었다.

몇 해 전 녹음이 짙게 깔린 어느 여름 한 낮.

이 산 저 산 돌아다니며 열심히 약초를 캐던 떠돌이 총각 하나가 집에서 식사 준비 중이던 가경처녀를 급히 찾아와 놀라운 소식을 전하였다. 사냥중이던 그녀의 아버님이 발을 잘못 디디는 바람에 절벽에서 그대로 굴러 떨어지셨다는 것이다. 깜짝 놀란 가경처녀는 약초 캐는 총각과 함께 아버님이 떨어지셨다는 절벽 아래로 급히 달려갔다. 다행히 그녀 아버님은 숨이 아직 붙어 있었고, 두 사람의 도움을 받아 안전하게 집으로 옮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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