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199>
궁보무사 <199>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10.2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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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피는 피로 갚는다.
"분부대로 곧 거행하겠습니다."

외북은 뭔가 믿는 데가 있어서인지 얼굴 위에 환한 미소를 머금으며 오근장 성주에게 이렇게 답을 하고는 정중히 인사를 올린 뒤 허겁지겁 서둘러 밖으로 다시 나갔다.

"내가 고 계집년을 잡아오기만 하면."

오근장 성주는 이렇게 외치며 탁자 아래에 있는 말짱한 암퇘지 한 마리를 번쩍 들어가지고 탁자 위에 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거침없이 암퇘지의 두 다리 사이를 쩍 벌려댔다.

두릉은 성주의 다음 행동이 충분히 짐작되기에 슬그머니 시선을 돌려버렸고, 연이어 처절한 암퇘지의 비명소리가 탁자 위에서 또 터져 나왔다.

'아! 아! 아무리 말을 하지 못하는 동물이라고 해도 그렇지. 인간으로서 어떻게 감히 저런 짓을 할 수가 있을까!'

이때 처소 안으로 들어온 창리 대신이 두릉을 향해 가만히 손짓을 해보였다. 이것은 얼른 밖으로 나가서 뭔가 얘기를 함께 나눠보자는 뜻이었다.

두릉은 그러잖아도 거북살스럽기 짝이 없는 자리인지라 얼씨구나 하고 밖으로 나갔다.

"아니, 이보게. 이게 어찌된 일인가"

창리는 두릉이 밖으로 나오자마자 이맛살을 크게 찡그리며 이렇게 먼저 물었다.

"뭘 말인가"

"자네 부하 백곡 말일세. 그자는 자네가 명령을 보냈음에도 왜 고집을 꺾지 않고 동북쪽으로 계속 부대를 몰고가고 있는가 그러다가는 소수성 사리성주와 충돌할 수도 있을 것이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강력한 금왕의 군대와 정면으로 맞붙게 될 것이 아닌가 만에 하나 큰일이라도 벌어지게 된다면 대체 이를 어찌할 셈인가"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나 창리, 자네 의견을 한번 말해보게."

두릉이 창리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백곡에게 어서 빨리 군대를 원위치로 되돌리고 팔결성 안으로 혼자 들어오라는 명령을 자네가 강력하게 다시 내려보게나. 그냥 그대로 가만히 놔뒀다가는 장차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는지 아무도 모른다네. 도대체 이에 대한 뒷감당을 어찌하려는가"

"알았네."

창리의 말에 이렇게 대답하는 두릉의 얼굴 위에는 왠지 모를 수심이 가득 차 보였다.

물론 그것은 자신의 충성스러운 부하 백곡의 안위(安危)에 관한 염려 때문이었다.

백곡을 불러들이자니 다른 부하들의 말마따나 백곡의 생명이 보장 받을 수 없을 것만 같고, 그렇다고 그냥 가만히 놔두자니 정말로 뭔가 일이 크게 터질 것만 같고.

이거야말로 두릉에게는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이 아닐 수 없었다.

여기는 한벌성 서남쪽 방향으로 멀리 떨어진 어느 산속.

대중소(大中小)를 확연히 구분이라도 시켜주는 듯 크기가 각기 다른 세 개의 무덤 봉분 앞에 하얀 치마저고리를 입은 가경 처녀가 홀로 서 있었다.

가경처녀는 제일 크게 만든 봉분 앞에서 가득 부은 술잔을 먼저 올리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버님! 기뻐하세요. 아버님께서 그토록 들어가고 싶어 하시던 한벌성 안으로 딸인 제가 들어가게 되었어요. 그리고 아버님께서 그토록 보좌해 드리고 싶어 하셨던 한벌성주님의 따님을 오늘부터 제가 호위해 드릴 수 있게 되었고요. 아버님! 항상 저를 지켜봐 주세요. 아버님의 뜻에 거슬리지 않는 좋은 딸이 되도록 저는 항상 노력할 테니까요."

말을 마친 가경 처녀는 아버님의 무덤을 향해 큰 절을 넙죽 올렸다. 그리고 커다란 봉분 주위를 돌아다니며 가경 처녀는 술잔에 담긴 술을 조금씩 골고루 뿌려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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