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사막을 건너는 늙은 낙타의 발자국
겨울, 사막을 건너는 늙은 낙타의 발자국
  • 윤승범 <시인>
  • 승인 2015.01.27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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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윤승범 <시인>

내가 사는 어중간한 중소 도시는 날이 어두워지면 인적이 끊기기 일쑤입니다. 허름한 도시의 문 닫힌 가게 창문엔 ‘점포 임대’라는 낡은 글씨가 많이도 보입니다. 사람들은 잠깐 나왔다가 바로 들어가고 ‘황금붕어빵’ 리어카 장사도 단속을 피해 인적이 드믄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사먹기도 어렵고 팔기는 더 어렵습니다.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조금 분잡해서 사람이 사는 곳처럼 보이기는 하나 평일에는 그나마도 줄어 마른 대추처럼 쪼그라든 할머니만 덩그라니 시든 과일을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날이 따뜻한 계절에는 보기에도 덜 허름하고 햇살이 반짝이는 모습에 힘들게라도 버티기는 하지만 문제는 겨울입니다.

허름한 도시의 겨울은 낡고 누추합니다. 종이박스는 버려지자마자 누군가의 손에 옮겨집니다. 폐지를 줍는 사람들은 노인들이 많지만 요즘들어 중년의 모습도 보입니다. 제각기 힘에 닿는 운반 도구로 누구는 유모차로, 자전거로, 리어카로 모아서 고물상으로 가져갑니다. 그게 어느 정도의 보수를 받을 수 있는지는 모릅니다. 단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나마도 치열한 경쟁이 따른다는 것만 압니다.

퇴근길이었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등 굽은 노인이 끄는 수레에는 종이박스가 가득했습니다. 굽은 노인의 힘에 버거운 그것을 끌고 가는 모습에서 사막을 횡단하는 늙은 낙타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늙은 낙타가 사는 사막은 건초도 물도 없고 제 혹에 담아 둔 지방이 다 떨어지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도 다 쪼그라들어 이 겨울이나 날 수 있을까 싶습니다. 낙타가 건너는 사막이나 노인이 건너는 도시의 비정함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낙타는 마실 물이 없고 노인은 주을 종이박스가 없습니다. 간신히 뒤지고 찾아내도 한끼의 양식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나마 낙타에게는 혹에 담아 둔 양식이라도 있지만 그것마저 준비되지 않은 노인에게 삶이란 버릴 수도 없고, 이어 가기도 버거운 거추장스러운 애증일 것입니다.

차라리 번화한 대도시에 산다면 조금 더 나았을까요? 아님 더 작은 시골로 가면 나았을까요? 어느 것이 나은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갓난 아기의 옹알이는 귀엽다고 하면서 나이 든 몸에서 나는 냄새는 추하다고 꺼립니다. 저 몸이 왜 늙었는지, 무엇하다 늙었는지는 생각도 안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곧 그렇게 냄새나고 초라해 질 것은 생각도 안합니다. 살아있는 어떤 존재도 피할 수 없는 과정이지만 너무도 혹독한 시련의 모습입니다. 살아 백년의 생명 연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살아 존엄한 모습이 더 나을듯 싶습니다.

사막을 건너는 늙은 낙타는 초라합니다. 그러나 그 낙타는 결국 우리 모두가 거쳐야 할 삶에서 죽음에 이르는 모습일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늙은 낙타가 남긴 발자국 위로 하얀 눈이 쌓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안 보이지만 녹으면 더 축축하고 추레해지겠지요. 지친 삶의 흔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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