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자라는 양배추
거꾸로 자라는 양배추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5.01.25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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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

식탁 중앙엔 둥근 양배추가 놓여있다. 어미 몸에 붙어 싱싱하게 자라는 양배추의 어린 싹들이 한겨울에 내 시선을 끈다. 겨울에 보는 것이어서 더 신기하다. 혼자 보기 아쉬워 그 모습을 담아 친구들, 지인들에게 카톡으로 날린다.

한 달 전 육거리시장에서 100 0원을 주고 구입한 양배추를 차일피일 미루다 해먹지 못했다. 김치냉장고 야채박스에 있던 것을 냉장고 밖으로 꺼내 놓았다. 많이 시든 겉떡잎을 벗겨냈다. 굵게 드러난 양배추의 줄기가 보인다. 그렇게 방치했던 양배추를 또 해먹지 못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엎어놓은 양배추 굵은 줄기 떡잎 벗겨낸 자리마다 자잘한 싹이 돌려가며 돋았다. 똑바로 세우면 쓰러져 엎어 놓은 것이다. 분명히 양배추가 거꾸로 놓인 곳에서 나온 싹은 모체의 반대방향인 위로 자라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관심이 생겼다.

반면 싹들이 싱싱하게 자라갈수록 양배추 모체는 밖의 잎부터 종잇장처럼 말라간다. 손으로 만지니 바스락거리며 부서진다. 작은 싹들이 어미의 양분을 빨아먹고 자라니 쇠약해지는 모습이 눈에 드러난다. 

마치 어미 살을 먹고 자라는 논우렁이 새끼 같다. 어린 양배추들이 자라는 모습은 연한 녹색 화분에 초록빛 어린 싹을 여러 포기 모아 심은 듯 그렇게 소담스럽다. 이 생명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지만 다하는 날까지 기다려 보려 한다.

그 말라가는 양배추의 원래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에 잠긴다. 식물이지만 우리 인생의 삶을 많이 닮은듯 하다. 그래서 자꾸 더 관심이 가는 것은 아닌지. 옆에 두고 만져보기도 하고 쳐다보기도 한다. 말라 가는 잎을 하나씩 떼어낼 때마다 어린 싹은 또 돋아난다. 원래는 반대로 자라야 정상인 것인데 양배추를 엎어 놓았기 때문에 거꾸로 자라는 것이다.

처음에 야채박스에서 꺼낼 때는 좀 시들었지만 그래도 촉촉했다. 이젠 자신은 쇠하여가며 어린 자식을 키우는 어미처럼 그렇게 말라가는 모습에 연민이 생긴다. 

식물도 이런 희생을 통해 어린 싹을 키운다. 양배추 역시 잎이 떨어져 나간 부분에서 새 생명이 탄생하는 것이다. 생명에의 경이로움, 사람이나 사물 모습만 다르지 근본적인 것은 모두 같은 것을 눈으로 본다.

60평생 처음 보는 모습이어서 신기한 눈으로 곁에 두며 만져보고 바라보고 한겨울의 식물 놀잇감이 된 것이다. 두 손으로 만져본다. 장소도 옮겨가며. 물을 주지 않아도 싱싱하다. 어미는 새끼들에게 수분을 다 빼앗기고 자꾸 말라간다. 버렸으면 보지 못했을 보물처럼 귀한 양배추. 올겨울은 이것으로 인해 비어있던 삶의 한 부분을 채운다. 

지금도 두 손으로 양배추를 드니 밑 부분이 바스락 거린다. 부서지는 아픔이 소리 없이 우는 모습처럼 애처롭다. 양배추 껍질을 한 장씩 떼어낼 때마다 벌써 떡잎 속엔 새움이 이미 기다리다 얼굴을 내민다. 어미 방향으로 향해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작은 싹은 위를 향해 조금씩 자란다. 어찌 이렇게 신기하단 말인가. 원래 있던 것을 내가 알지 못한 것은 아닌지. 생물의 생성과정을 잘 모르는 내겐 큰 소득이었다. 어린 것이 굵은 줄기에서 싹이나 자라는 모습에 마치 우리 아이들이 내 곁을 떠나 스스로 독립하는 것처럼 애틋함이 묻어난다.

어린 양배추들은 어미와는 반대 방향으로 자라고 있다. 나와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화가 없는 안주하는 삶을 원한다. 그러나 때로는 생각의 방향을 전환하여 도전하는 용기도 필요하지 않은가. 거꾸로 자라는 양배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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