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암'은 고려 때 세워진 사찰로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지만, 1780년쯤부터 젊은 학자들이 모여 이익의 실학 사상과 서양의 학문, 천주교 교리를 연구하고 토론하던 곳으로 천주교가 국내에 들어오는 발판을 마련한 곳이다. 대부분 천주교가 다른나라 선교사들의 전도로 시작됐으나 우리나라는 1779년 당시 학자들에 의해서 시작됐고, 부처를 모시는 사찰에서 시작된 점이 특이 할만하다.
지금부터 227년 전 앵자봉 자락 천진암에 당대의 석학 권철신이 주재하는 강학회에 참가한 10여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권철신의 동생 일신,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그리고 이승훈, 이벽 등 10여명이다.
권철신을 중심으로 한 남인 계열의 소장학자들로 이익의 서학열을 이어받아 경기도 여주·광주 등지의 사찰에서 강학을 주재했다.
당시 이들은 천학(天學) 대한 연구를 주로 하였으며, 서학을 집중적으로 탐독하던 이들은 6~7년간의 강학회(講學會)를 통하여 종교적 신앙인 천주교회로 승화 발전하였다. 천주교 발상지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한국 천주교회에만 있는 자랑스럽고 거룩한 성지이다. 하지만 이들은 1785년, 1791년, 1795년 박해에 이어 1801년 신유박해 때 대부분 순교했다. 이렇듯 '천진암' 한국 천주교회 발상지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곳이지만 오랫동안 잊혀져 있었다.
늦은 시간이라 입구에서 출입을 금지 시켰다. 하지만, 이곳 청주에서 '천진암'을 방문한 경위와 취재방향을 설명한 후 입장할 수 있었다. 관리인의 배려로 차를 출입시켜 주었다. 걸어서 한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를 조금은 수월하게 '천진암'까지 둘러 볼 수 있었다. 가는 곳마다 공사 현장이였다.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동행한 강문식(서울 청원고등학교 역사교사)로부터 천진암에 대한 알찬 내용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공범 이름 : 성명옥
강문식 교사는 또 ‘대학친구들이 시민단체에서 많이 활동하고 있다는 이유’로 시민단체 터의 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