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발자취를 찾아서 <42>
기독교의 발자취를 찾아서 <42>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0.25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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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발상지 천진암
신 준 수 <객원기자>

잊혀졌던 천주교 '요람지' 세상밖으로…

 고려시대 사찰터에 자리잡아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로 성역화 되어 있는 천진암(天眞庵)은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앵자산의 깊숙한 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1780년경 천주교 교리 연구하던 곳

'천진암'은 고려 때 세워진 사찰로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지만, 1780년쯤부터 젊은 학자들이 모여 이익의 실학 사상과 서양의 학문, 천주교 교리를 연구하고 토론하던 곳으로 천주교가 국내에 들어오는 발판을 마련한 곳이다. 대부분 천주교가 다른나라 선교사들의 전도로 시작됐으나 우리나라는 1779년 당시 학자들에 의해서 시작됐고, 부처를 모시는 사찰에서 시작된 점이 특이 할만하다.

지금부터 227년 전 앵자봉 자락 천진암에 당대의 석학 권철신이 주재하는 강학회에 참가한 10여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권철신의 동생 일신,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그리고 이승훈, 이벽 등 10여명이다.

권철신을 중심으로 한 남인 계열의 소장학자들로 이익의 서학열을 이어받아 경기도 여주·광주 등지의 사찰에서 강학을 주재했다.

당시 이들은 천학(天學) 대한 연구를 주로 하였으며, 서학을 집중적으로 탐독하던 이들은 6~7년간의 강학회(講學會)를 통하여 종교적 신앙인 천주교회로 승화 발전하였다. 천주교 발상지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한국 천주교회에만 있는 자랑스럽고 거룩한 성지이다. 하지만 이들은 1785년, 1791년, 1795년 박해에 이어 1801년 신유박해 때 대부분 순교했다. 이렇듯 '천진암' 한국 천주교회 발상지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곳이지만 오랫동안 잊혀져 있었다.

200년후인 1960년대 알려지기 시작 200년이 지난 1960년대에 와서야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고, 1975년 폐사가 된 '천진암'터를 여러 문헌과 마을 노인들의 증언으로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1979년부터 천주교 200주년을 기념하는 천진암 성역화 사업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입구에서 천진암까지는 한참을 걸어야 다다를 수 있다. 천진암으로 오르는 길은 제법 깊은 숲을 이루고 있다. 오솔길을 조금 빗겨나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 기념 비석'이 세워져 있고, '천진암'터에는 천주교 창립자 5위 이벽, 권철신, 권일신, 이승훈, 정약종의 묘가 모셔져 있으며, 입구에는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대성당 건립 위해 정신운동 펼쳐 …  건물복원 보다 인물 복원사업에 무게 100년계획 천진암대성당 건립은 현재 대성당터 기단 5만여평의 터닦기 토목공사가 완공되었다. 현재 천진암대성당 건립을 위하여 가톨릭 신자들은 매월 1000원 이상 절약 봉헌하는 정신운동을 펼쳐 나가고 있다. 한국 천주교 발상지 천진암 성역화는 한국 천주교회 창립 200주년 기념사업으로 지난 1980년 6월 24일 한국천주교발상지천진암성지위원회를 조직, 추진됐다. 위원회 관계자는 "국가와 민족사의 면에서도 배달겨레 전체의 영원한 정신문화 창달이고, 한국 천주교회의 결정적인 토착화 과업"이라며 "대성당은 한국 천주교회 창립사를 올바르게 정립하고, 뿌리를 튼실히 다져 자손 만대에 걸쳐 진리와 신앙 전승을 다짐하는 역사적인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위원회는 특히 성역화 사업에 있어 '건물복원'보다 '인물 복원'에 무게를 둘 방침이다. 이런 맥락에서 잃어버린 성현들의 묘를 찾고, 친필과 유물을 수집해 기념관에 보존할 계획이다. 이들은 '인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신과 업적의 전승'이라 점도 간과하지 않겠다는 점도 강조했다.< 취 재 후 기 > 지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역사기행'천진암 기행에 동행했다. 이번 기행의 주제는 초창기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어떻게 수용되었고, 성호 이익의 제자가 성호 좌파와 우파로 나누어지는 과정과 정약용의 형제들이 어떻게 서학과 천주교로 나뉘어지는가, 황사영의 백서사건을 어떻게 민족사적인 관점에서 평가해야 되는가 하는 문제였다. 먼저 "다산 정약용을 알지 못하면, 근세 한국의 학문과 사상을 말할 수 없다"할 만큼 경제, 정치, 학문, 심지어 과학분야까지 다방면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대학자, 경기도 남양주 다산 정약용 생가 및 그의 업적을 둘러본 후 '천진암'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가 다 되어서였다.

늦은 시간이라 입구에서 출입을 금지 시켰다. 하지만, 이곳 청주에서 '천진암'을 방문한 경위와 취재방향을 설명한 후 입장할 수 있었다. 관리인의 배려로 차를 출입시켜 주었다. 걸어서 한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를 조금은 수월하게 '천진암'까지 둘러 볼 수 있었다. 가는 곳마다 공사 현장이였다.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동행한 강문식(서울 청원고등학교 역사교사)로부터 천진암에 대한 알찬 내용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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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알고싶다 2023-10-08 01:13:01
성폭행범. 촬영, 협박, 이름 : 강문식 충북대 사회교육학과 졸업. 성공회대학 졸업 운동권.
공범 이름 : 성명옥
강문식 교사는 또 ‘대학친구들이 시민단체에서 많이 활동하고 있다는 이유’로 시민단체 터의 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