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벤처붐, 그리고 창조경제
90년대 벤처붐, 그리고 창조경제
  • 엄경철 기자
  • 승인 2015.01.14 1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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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엄경철 취재1팀장<부국장>

“창조경제의 불길이 대한민국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벤처 성공신화가 연이어 탄생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

지난해 11월 창조경제박람회 개막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한 말이다. 제2의 벤처 붐을 일으키고자 하는 야심찬 의지가 담겨 있다.

창조경제 근간은 벤처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기술력으로 무장한 많은 창업가들이 도전하고 있다. 그 도전이라는 것이 반드시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과거 벤처거품이 꺼지며 1세대 벤처기업들이 사라져간 사실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1990년대 말 김대중 정권 시절 벤처붐이 일었다. 당시 국가 핵심정책이 벤처기업 육성이었다. IT 중심의 벤처붐은 젊은 창업가들을 졸지에 벼락부자로 만들었다.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IT 중심이었던 벤처는 그 영역을 넓혀갔다. 지방자치단체들도 벤처육성에 몰두했다. 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창업인큐베이터를 운영했고, 창업자금도 지원했다.

대학에도 벤처붐이 일었다. 대표적인것이 대학실험실공장이었다. 대학의 고급인력들이 내놓는 아이디어, 기술력과 각종 장비를 활용한 창업이었다. 전국 대학들이 앞다퉈 대학실험실공장 운영을 교수, 대학원생들에게 권장했다.

일부 대학은 대학실험공장과 연계, 대학기업을 운영했다. 충북지역 대학들도 대학실험공장, 대학기업 운영에 나섰다.

지역대학의 교수, 대학원생들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 아이디어가 접목됐다. 아이디어와 기술은 대학실험실에서 어느 정도 검증단계를 거친 것들이었다. 그만큼 제품화될 경우 성공 가능성이 높았다. 

분야도 처음에는 IT에서 다양화됐다. 생물, 축산, 의약품 및 의료기기, 화장품, 심지어는 기능성 건강식품까지 개발했다. 대학실험실공장에서 제품화가 어려울 정도로 대량생산이 요구되는 것들은 대학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대학가는 김대중 정권이 끝날 때까지 벤처, 대학실험실공장에 대한 열정으로 달아올랐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경제정책도 바뀌었다. 벤처거품이 꺼져가기 시작했다. 대학가의 실험실공장, 대학기업의 운명도 갈렸다.

정부의 경제정책이 바뀌고 벤처에 대한 열정이 식어가자 우후죽순처럼 생겼던 대학실험실공장, 대학기업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잊혀진 단어들이 됐다.

잠깐 반짝했던 대학실험실공장 운영은 그 아이디어가 참신했다. 대학실험실에서 만들어지고 검증된 기술을 대학이 보유하고 있는 장비 등을 활용, 제품화한다는 것 자체가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간과한 것이 있었다. 바로 유통이었다. 유통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이 참신했던 대학실험실공장이 사라지게 된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대학교수, 대학원생들은 실험실에서 연구하고 기술개발만 했다. 그런 그들이 유통문제를 극복하기 어려웠다. 이공계열 대학교수, 대학원생들이 경쟁력있는 기술 하나만으로 도전했던 실험실 창업은 전쟁터와 같은 유통시장에서 된서리를 맞았다.

일부 대학에서는 이들 실험실공장 제품들의 유통을 위해 관련 분야의 교수까지 동원했지만 실패했다. 어떤 경우는 대기업들이 유사제품을 쏟아내면서 꽃을 피우지 못했다. 빚더미에 앉은 이들도 나왔다.

새로운 부가가치와 일자리, 성장동력을을 만들어내는 일련의 활동인 창조경제가 성공하려면 적어도 과거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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