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보내며
한해를 보내며
  • 임성재 기자
  • 승인 2014.12.30 1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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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임성재 <프리랜서 기자>

2014년의 마지막 날이다. 어느 때 보다 힘든 한 해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힘들게 한해를 보낸 적이 있었던가? 

연초부터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로 대학생들이 참변을 당하더니 4월엔 세월호 참사가 있었다. 그리고 군대에서는 왕따가 빚어낸 총기난사 사고로 5명의 사병이 숨지고, 고참병들의 지속적인 구타로 한 사병이 사망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대통령이 지명한 국무총리 후보자 2명이 부적격한 사유로 인해 인사청문회도 가지 못하고 연달아서 낙마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고, 현직 지검장을 비롯한 검찰총장, 국회의장 출신과 세계적인 석학이 빚어낸 성추행 사건은 쓴 웃음을 짓게 했다. 대통령 주변의 문고리 권력들이 국정에 개입하고 문서를 유출한 사건이 발생했고, 부도덕한 자본의 전횡을 보여준 땅콩회항 사건과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은 국제적인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다. 

충북도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6·4 지방선거 결과 도의회에서 다수당이 된 새누리당이 도의회의 감투를 싹쓸이하여 도의회는 파행을 겪고 있고, 도민들의 절대다수가 반대하는 의정비를 전국최고로 인상하여 도민들을 분노케 했다. 또 선거를 통해 선출된 도내 선출직들이 줄줄이 검찰과 법원을 드나들고 있어 재선거를 치러야 하는 것은 아닌지 도민들이 불안해하고, 도내 최대사학인 청주대 사태는 학교재단 세습의 폐해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또 진천에서 발생하여 확산되고 있는 구제역도 농가의 시름을 더해주고 있다. 

이렇게 힘들게 보낸 2014년에 한줄기 희망이 있었다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이다. 교황이 보여준 약한 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물질만능주의에 젖어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고 살아온 우리사회에 통렬한 교훈이 되었다. 교황은 대통령도 외면한 세월호 유족들과 아픔을 같이했고,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제주 강정마을과 밀양주민들, 용산 참사 피해자, 납북자 가족, 장애인 등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올바른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의 유혹, 그리고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기를 바란다”는 당부의 말씀을 남겼다. 

올해는 많은 시간을 거리에서 집회와 농성으로 보냈다. 지난해부터 국정원의 대선개입 관련 집회를 이어오다가 4월 이후엔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진상규명을 위한 집회를 계속해 왔다. 계절이 몇 번 바뀌도록 거리에서 보냈건만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국정원 대선개입은 세월호에 묻혔고, 9명의 실종자를 찾지 못하고 수색을 끝냈건만 세월호 특별법은 아직도 표류중이다. 모든 것이 미완(未完)으로 남아있다. 

어제와 다를 것이 없는 똑 같은 해가 뜨는 날인데도 우리는 새해라는 이름으로 희망과 기대, 설레임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날을 기해 무언가 달라지기를 간절히 원한다. 우리에게 2015년의 의미도 이와 같건만 크게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의 불통과 검찰의 정권바라보기, 언론의 편향 보도, 자본의 세습과 전횡, 가진 자의 특권의식 등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쉽게 고쳐지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새해를 어떻게 살아야할까? 선조 때의 문인 신흠의 한시를 생각하며 새해를 다짐해 본다. 

桐千年恒藏曲 / 오동나무는 천년이 지나도, 그 곡조를 간직하고

梅一生寒不賣香 / 매화는 일생을 추위 속에 살아도, 그 향기를 팔지 않으며

月到千虧餘本質 / 달은 천 번이 이지러져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고 

柳經百別又新枝 / 버드나무 가지는 백번이 꺾여도, 새 가지가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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