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세상
도종환
잎새 다 떨구고 앙상해진 저 나무를 보고
누가 헛살았다 말하는가 열매 다 빼앗기고
냉랭한 바람 앞에 서 있는
나무를 보고 누가 잘못 살았다 하는가
저 헐벗은 나무들이 산을 지키고
숲을 이루어내지 않았는가
하찮은 언덕도 산맥의 큰 줄기도
그들이 젊은 날 다 바쳐 지켜오지 않았는가
빈 가지에 새 없는 둥지 하나 매달고 있어도
끝났다 끝났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실패했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이웃 산들이 하나씩 허물어지는 걸 보면서도
지킬 자리가 더 많다고 믿으며
물러서지 않고 버텨온 청춘
아프고 눈물겹게 지켜낸 한 시대를 빼놓고
※ 계절마다 빛깔이 다르지만 겨울이 주는 고독의 빛깔은 숭고합니다. 흰눈에 덮인 산과 들, 그리고 나무의 모습은 근접하기 어려운 경외감을 줍니다. 봄과 여름, 가을 좋은 시간 다 보내고 대면한 겨울의 삭막함을 질책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까닭입니다. 늙어가는 것도 그런 것임을 겨울나무에서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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