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 있는 죽음
품위 있는 죽음
  •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 승인 2014.12.16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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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상옥 <다정갤러리 대표·시인>

노인들은 다 비슷합니다. 누군가 말을 붙여주면, 당겨 앉으면 갑자기 안색에 혈기가 돌며 뭔 얘기가 그렇게나 많은지 주저리 주저리 끝없이 쏟아놓으십니다. “난 지대루 죽을 끼여!” 할머니는 ‘지대루’에 힘을 주어 말씀하십니다. 여든 셋, 여든 셋이면 뒷방 노인신세가 된지도 오래전입니다. “할머니, 지대루 돌아가신다는 게 뭐예요?” “아 글씨 움직일 수 있을 때 꺼정 움직이다가 내가 내 죽고 싶을 때 죽는 거이 소원이란 말이지.” “아유, 누구나 다 그렇게 하고 싶죠.” “아녀. 아녀, 몸은 그저 써 먹어야 혀! 안 써 먹으면 더 빨리 망가져뿌러, 우리 또래 할망구들 일찍부터 벌벌 떨고 노인병원에 입원한 늙은 것들, 죄다 감옥살이여! 처음에는 자식들도 친구들도 드나들며 봐 주지만 그 거이 잠깐뿐이고 내가 거기 잠깐 가 봐서 아는데 그거이 사는 게 아니여! 나 봐, 온 삭신이 다 무너지는 것 같아도 밖에 나와 이렇게 내 발로 댕기고 먹고 싶은 것도 먹고 하니 아직 살아있잖여.” 

한의원에서 만난 할머니는 여든 셋이나 되었지만 가으내 여주로 일을 다니셨답니다. 어쩌다 오늘 하루 날이 비어서 침 맞고 물리치료 하러 오셨다는데 새벽 5시에 일어나 트럭이나 봉고를 타고 가서 종일 일하는 일당이 6만원이랍니다. 고구마, 도라지, 땅콩, 인삼을 주로 캐는데 한 시절 벌이가 쏠쏠하다며 인원을 모으고 일자리를 소개하는 누군가는 두당 소개비도 몇 푼 더 받는 눈치라고 일 하는 사람에 따라서 6만, 7만, 8만원까지 다양하게 받는다며 자랑이 늘어지십니다. 할머니의 몸 상태는 병원이 딱 어울리는데 병원은 절대 싫다며 병원에서 안 죽는다 하십니다. 늙었으니 아픈 게 당연하다며 친구는 병원에 누워서 7년째 살아있는데, 죽을 만하면 살려 놓고 죽을 만하면 살려 놓고 아마 돈이 많아 당신보다 더 오래 살진 모르지만 당신은 그렇겐 안 살 거라고. 기어서라도 움직이다 아직 살아있는 영감 곁에서 죽는 게 소원이라고 너스레를 하십니다. 

정신력이 대단하신 친정엄마. 종가 큰며느리로 위엄과 원칙으로 평생을 불의에 굽히지 않았으니 치매는 엄마를 고집불통 아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치매 중임에도 어디 요양원이나 낯선 곳으로 보낼까 싶은 눈치라도 보이면 눈빛이 또랑또랑 해지면서 온 몸으로 상심한 내색을 하시니. 올해 연세가 여든 아홉, 나는 엄마가 저대로 끝까지 병원문턱을 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임종하시길 기도하곤 합니다. 살면서 누구나 가끔씩 죽음을 생각하지만 노인이 되면 그림자처럼 곁에 딱 붙어서 수시로 보채는 죽음은 치료에 집착하는 효성스러운 자식이나 삶에 집착하는 환자에겐 친구가 됩니다. 의술의 발달로 자연스러운 죽음은 희귀해졌고, 삶을 연장할 수 있다는 유혹을 떨쳐버릴 사람도 희귀해졌습니다. ‘품위 있는 죽음’의 선택은 하나의 새로운 도전이 되었습니다. 

최근 미국에선 뇌종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던 여자가 스스로 정한 날짜에 안락사 하기 위해 안락사를 인정하는 오리건주로 거주지를 옮겨 죽음을 결행했답니다. ‘자살’이라고 비난하거나 ‘존엄사’를 인정하는 여론이 반반이었다는데 좋은 죽음을 준비하려는 사회적 움직임에 공감하며 노인 인구가 급증하는 우리에게도 ‘품위’ 있는 죽음의 관점으로 ‘죽음의 질’을 관리하는 병상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지팡이를 잡으며 “내 그저 이대로 살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며칠 곡기를 끊으면 가고 말테지. 늙은 내 몸이 뭔 힘이 있간디. 그냥 정신 멀쩡할 때 애들헌티 허고 싶은 말도 하고 내 몸 내가 편편히 가게 허문되는 겨.” 당당한 할머니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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