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여인
무너지는 여인
  • 김혜식(수필가)
  • 승인 2014.11.23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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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의 가요따라 세태따라
김혜식(수필가)

어느 여배우에게 한때 홀딱 반한 적이 있었다. 그녀의 빼어난 미모를 돋보이게 하는 건강미 때문이다.

흔히 아름다운 사람을 일컬어 ‘심신이 건강한 자’라고 말한다. 심신이란 무엇인가. 건강이란 육체와 건강한 정신을 뜻함이 아닌가. 육신은 정신의 지배를 받기 마련이다. ‘마음의 감기’라는 우울증의 발병은 밤잠도 제대로 못 이루게 하여 인체의 면역력 저하를 불러온다. 이로보아 병든 정신이야말로 만병의 병소病巢가 되지 않을까 싶다.

친정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시내 모 의료원에 입원중이다. 병간호를 하기 위해 병실을 찾았다. 입원 중인 50대 중반의 어느 여인이 곁의 환자에게 느닷없이 고함을 지르며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상대는 연로한 할머니였다.

병실의 커튼을 할머니가 건드렸다는 것이 이유란다. 이 광경을 목격하며 자신의 부모 같은 노인에게 하찮은 일로 시비를 거는 것을 보고 참으로 몰상식한 여인이라는 생각에 입맛이 씁쓸했다. 그 할머니는 돌발적인 여인의 행동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새파랗게 질려 부들부들 온몸을 떨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서서 그녀를 제지 하지 않았다. 떠들썩한 소리에 간호사가 몇몇 왔으나 그녀를 보는 순간 모른 체 뒤돌아선다. ‘저 여인 인간 말종이구나!’ 하는 판단이 서 나 또한 얼른 어머니를 모시고 병실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간병인 듯한 여인이 내게 다가와 말을 전해 준다. 종전의 그녀는 이 병원에 일 년 넘게 입원한 환자로 병원에서도 그녀를 탐탁히 여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 때문에 그동안 함께 입원한 환자들이 견디지 못하고 다른 병실로 옮겼다는 말과 그녀를 찾는 친척도 전혀 없는 걸로 봐 고아인 듯하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녀의 행동에 다소 이해가 갔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만이 남에게 사랑을 베풀 줄 안다.

천애 고아로 자라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그녀이다. 병원에서 주위로부터 따돌림과 눈총을 받으면서도 그녀가 멀쩡한 몸으로 다시 병원을 찾는 것은 사회로부터의 소외 때문이 아닐는지. 자신이 입원한 병실이야말로 세상에서 소외된 자신을 가장 따뜻하게 감싸주는 보호막이라는 착각에 빠진 그녀에게 측은지심마저 일었다. 이때 임재현의 `모래성'이란 노래가 문득 떠올랐다.

‘가슴으로 무너진 세월/내 맘 속에 흘러내려/이제는 멀어져 가는 추억의 모래성이여/걸음마다 헤어날 수 없는/더욱 깊이 빠져들고/덧없이 사라져가는 내 안의 모래성이여/수 없는 많은 날들을 사랑으로 쌓아 왔지만/허물어져간 잊혀져 가는/그 시간 속에 나는 얽매여/초라한 그 모래성을 목메어 바라보네.’(생략)

사람은 누구나 가슴에 성을 쌓고 있다. 그 성곽의 돌은 저마다 지닌 사상과 철학을 가지고 포개포개 쌓인 채 거대한 곽(郭)을 이루고 있다. 부와 명예, 장수와 건강은 사람마다 추구하는 지향점이다. 그러나 그 지향점에 도달하는 방법은 각기 다르기 마련이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쌓는 마음의 성은 성공의 과정이기에 혼신을 경주하여야 한다.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도 이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빼어난 미모를 돋보이게 하는 건강미 때문에 내가 반한 그 여배우도 아마 성축장이에 버금가는 힘으로 자기 건강을 쌓고 있을 터이다. 

어머니 병동의 난폭환자, 그는 아마도 사이코패스를 위한 성 쌓기에 열중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약자에 대한 지배의 매력, 자신보다 늙은 노약자를 괴롭히며 얻어지는 쾌감, 그것을 위해서 쌓아 놓은 성인 듯하다. 하기에 그 성은 미세한 바람에도 무너질 모래성과 같다.

사람답게 사는 일은 머리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으로 행동해야 한다. 사람이 꽃보다 어여쁜 것은 아름다운 가슴을 가졌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가슴은 모래성을 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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