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여덟, 안정된 사회를 이루는 길
일흔여덟, 안정된 사회를 이루는 길
  • 김태종 <삶터교회목사·생태교육연구소 터 소장>
  • 승인 2014.11.20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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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종의 함께 읽는 도덕경-땅에서 듣는 하늘의 노래
김태종 <삶터교회목사·생태교육연구소 터 소장>

天之道(천지도)는 其猶張弓與(기유장궁여)하니 高者(고자)는 抑之(억지)하고 下者(하자)는 擧之(거지)하며 有餘者(유여자)에게서는 損之(손지)하고 不足者(부족자)에게는 補之(보지)하니 天之道(천지도)는 損有餘(손유여)하여 而補不足(이보부족)이나 人之道(인지도)는 則不然(즉불연)하여 損不足(손부족)하여 以奉有餘(이봉유여)하더라.

孰能有餘(숙능유여)로 以奉天下(이봉천하)인가 唯有道者(유유도자)니 是以(시이)로 聖人(성인)은 爲而不恃(위이불시)하고 功成而不處(공성이불처)하니 其不欲見賢(기불욕견현)이니라.

- 하늘이 하는 일은 마치 활을 당기는 것과 같아서 솟아오르는 것은 눌러 낮추고 쳐지는 것은 돋워 올리며 남는 것에게서는 덜어내고 모자란 데에다가는 채우니 하늘이 하는 일은 남는 데서 덜어 모자란 데다 보태나 세상 돌아가는 것은 그와 달라 모자란 데서 헐어내어 남는 데다 더 쌓는다./ 누가 남는 것으로 세상을 모시겠는가. 오직 하늘이 하는 일을 따르는 사람이니 그러므로 제대로 사는 이는 일을 했다고 뽐내지 않고 공을 이루었다고 거기서 몫을 챙기지 않으니 자신이 어질다는 것까지도 드러낼 뜻이 없는 것이다.



= 활을 당긴다는 것이 어떻게 ‘하늘이 하는 일’과 연결이 되는지에는 논리적으로 연결이 잘 안 됩니다. 활을 만드는 이가 시위를 당겨 세기를 맞추는 것을 이르는 말인지, 아니면 활을 쏘는 이가 화살을 메겨 시위를 당긴다는 것인지, 또는 그것이 어떤 종류의 활인지, 그리고 과녁에 적중시키기 위해 활을 위아래로 조절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 해석을 하는 이들이 있으나 그 또한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으니 아무튼 고르게 펴는 일이 어떤 것인지를 말하기 위해 끌어온 하나의 장치라는 정도로 말을 하고 넘어가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남음이 있는 이에게서 덜어내어 모자란 이에게 채워준다는 말을 들으면 그냥 가슴이 먹먹한 아픔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사람의 일이란 마냥 모자란 이에게서 헐어내어 남는 데다가 쌓더라는 말에서는 할퀴는 아픔을 느끼게 됩니다. 힘없는 이들,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의 기름을 짜고 뼈를 깎아 가진 자와 힘 있는 자들의 더러운 욕망을 채워주려는 갖가지 법률적 해석이나 제도적 장치를 만들고 있는 세상이 우리가 어디서나 보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잠시 걸음 멈추고 숨 고르며 살피면 그 마저도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기도 합니다. 오래 산다고 해야 백년인데 내일모레면 입 벌리고 있는 무덤 광중으로 들어가거나 타오르는 불길에 휩싸였다가 한줌 재가 되고 말 사람들이 부리는 덧없는 욕망의 광란을 볼 때면 더욱 그러합니다.

높은 데는 낮추고 낮은 데는 돋우는 일, 그것이 법률이나 제도, 또는 정치나 행정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은 세 살배기 어린 아이라도 다 아는 일입니다. 그 간단한 원리를 어그러뜨리고 엉뚱하게 그와 반대의 세상을 만들어가려는 무모한 짓들이 세상의 모순과 대다수 사람들을 비극으로 빠뜨리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 그때나 이제나 다르지 않은듯 합니다.

인간이 인간으로 산다는 것,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를 다시 묻게 되는 대목, 존재에 대한 성실성과 자신에 대한 정직함이야말로 살아있는 것이 곧 행복의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기반이고, 모든 사회제도와 규범은 이것의 구현을 위해 존재할 때에 그 사회의 안정함이 보장되는 곳이 아니겠는가 싶은 겁니다. 

-날마다 좋은 날!!! - 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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