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끝자락에서의 또 다른 욕망
가을 끝자락에서의 또 다른 욕망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14.11.20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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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一筆
누구는 명퇴와 구조조정을 통보받은 당사자로서, 또 누구는 기울어가는 한 해가 가져다 주는 조바심 때문에, 그리고 어떤 이는 스스로가 지탱해 온 삶의 무게로 올해의 마지막 한달을 코앞에 둔 11월 끝자락이 그저 편치만은 않은 것 같다.

굳이 시간이나 계절적 흐름을 따지지 않더라도 겨울 초입은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 이제까지와는 다른 감정을 일으키게 한다. 월동준비를 서둘러야 하는 여타 동물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말이다. 

의학적으로도 성인들을 기준할 경우 지금의 시기가 불면증이나 우울증의 발병률에서 상대적으로 높다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잠을 제대로 못잔다든가 혹은 갑자기 말 수가 적어졌다는 얘기들을 주변에서 흔히 듣게 되는 요즘이다. 다른 건 다 차치하더라도 어쨌든 한 해를 갈무리하며 또 다른 계획과 고민에 봉착할 수밖에 없는 때인지라 잠자리의 뒤척임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과연 ‘국민의 공주’답게 김자옥은 죽음에서까지 아름다웠다. 암 선고를 받고나서 그가 방송에 나와 한 얘기 “암은 힘든 게 아니라 오히려 이별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병이다”라는 말이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6년 전 대장암 판정 후 재발과 폐암으로의 전이까지 겪으면서도 그 고통을 숨기면서 이런 자세를 가졌다는 게 참으로 경외롭기조차 하다.

그녀가 암시한대로 죽음을 앞두고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다. 대개는 마지막까지 살고자 발버둥치거나 갑자기 허무하게 작별을 고해 남은 이들을 힘들게 한다. 그녀가 말한 이별의 준비는 다른 게 아닐 것이다. 하나씩 내려 놓고 또 하나씩 포기하며 마지막엔 아주 가벼운 ‘나’를 맞이하는 것. 

사람들한테 죽기 전에 반드시 하고 싶은 일, 이른바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라고 하면 이 한가지는 거의 빠짐없이 등장한다고 한다. 해외여행을 실컷 하고 맛있는 음식에 하고 싶은 취미활동을 맘껏 즐기는가 하면 때에 따라선 나만의 공간과 정원에서 물리도록 독서하고 사랑하다가 거액의 로또 당첨까지 바라는 소위 인간본질(?)의 탐욕을 한껏 드러내다가도 돌연 약속이나 한듯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이런 표현을 남긴다는 것이다. 

좀 더 주변을 사랑하고, 더욱 가족들을 위하며, 마지막엔 사회봉사나 사회공헌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삶에 있어 죽음이라는 최악의 위기에서 되레 최고의 선(善), 이타(利他)를 꿈꾸는 것이다. 

이제껏 각자의 삶을 살아오면서 어느 한순간, 힘들고 어렵지 않은 때가 없었겠지만 최근엔 세대를 가리지 않는 역경과 고난이 늘 우리 주변을 맴도는 것 같다. 20~30대는 심각한 취업난에 얼굴빛이 회색으로 변했고, 40~50대 가장들은 삶의 불확실성에 치여 전전긍긍하는가 하면, 60~70대는 후반기 인생의 딜레마에 휘둘리며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어쩌다 등산이라도 할라치면 평일인데도 부딪치는 수심가득한 이 시대의 가장들, 한창 일할 나이임에도 그들의 풀죽은 모습이 싫어 아예 근처 산을 기피한다는 이들마저 있다. 

하지만 가장 큰 행복은 ‘현재’라고 했다. 늘 옆에 있고 항상 쉽게 누릴 수 있다고 여겼기에 우리가 깜빡하고 잠시 잊었을 뿐, 바로 이것들이 행복 그 자체라는 것이다. 어느날 지금의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서로 얼굴 대하기가 버겁기만한 배우자일망정 갑자기 사라졌다고 상상해 보라. 그 상실감은 말로써 다 표현하지 못한다. 자식이 군대에 가면 100% 효자가 되는 이유 역시 이렇다. 평소 익숙했던 것과의 별리, 그리하여 그 상실감에서 솟아나는 이제껏 당연하게 누렸고 또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한 소중함의 깨우침인 것이다. 

불가에선 욕심과 집착을 업(業)이자 살(煞)로 본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간 반드시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그것이 본인에게 다가올 수도 있고 아니면 후세로도 이어질 수 있다. 

김자옥이 암투병의 고통속에서도 하나하나 덜어내며 이별을 준비하고, 사람들이 버킷 리스트를 쓰며 이타(利他)를 떠올리는 것은 그들은 이미 이를 알았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어느덧 가을도 가쁜 숨을 몰아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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