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졸(守拙)에서 입신(入神)까지 골퍼의 9단계
수졸(守拙)에서 입신(入神)까지 골퍼의 9단계
  • 김기호 <골프칼럼니스트>
  • 승인 2014.11.06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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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호의 똑소리 나는 골프이야기
김기호 <골프칼럼니스트>

골프와 바둑, 인생은 닮은 점이 아주 많다. 한번 시작하면 돌아갈 수 없고 다시 시작할 수도 없다. 가장 큰 공통점은 셋 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6세기경의 남북조시대에 양무제는 오늘날의 단에 해당하는 바둑에 대한 기품을 만들었다. 그가 만든 기품은 많은 종목에서 널리 사용되는 치수의 개념이 된다. 바둑에서 단의 개념을 골프로 바꿔보았다. 

△수졸(守拙) - 초단 
이제 겨우 제 한 몸은 가눌 수 있게 된 단계다. 많은 타수를 기록하지만 골프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다. 시작단계라 매너와 에티켓,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사랑을 배워야 한다. 

△약우(若愚) - 2단
일견 어리석어 보이지만 나름의 생각과 지모(智謀)가 있는 단계. 100개 언저리를 치지만 먼저 생각하고 샷을 하지 못하고 치고 난 후 고민하는 하수의 틀을 벗지 못하고 있다. 좋은 스승과 좋은 동반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다. 

△투력(鬪力) - 3단 
어느덧 힘이 붙어 비로소 싸워야 할 상황에서 싸울 수가 있게 되었다.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지만 그렇게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90파를 하면서 비싼 돈에 장비를 바꾸고 허풍이 날로 심해진다. 

△소교(小巧) - 4단
소박하게나마 기교를 부릴 수 있게 된 단계. 국지전에서 용렬하지만 테크닉을 구사하기도 한다. 80대를 치지만 무차별 레슨한다는 점에서 덜컹거리는 빈 수레와 같다. 진정한 골퍼가 되었다는 점에서 하나의 인격체로 봐도 무방하다. 

△용지(用智) - 5단 
전투력도 생겼고 판을 보는 눈도 있어 지혜를 쓸 줄 아는 단계다. 가끔은 70대 초반과 중반의 스코어를 기록하며 기고만장하지만 아직은 어리석음도 함께 지녀 고수는 되지 못했다. 자칫 주화입마에 빠져 마도(魔道)로 접어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존경받는 고수가 되거나 하수를 괴롭히는 허접한 잡것으로 나눠지는 중요한 단계다. 

△통유(通幽) - 6단
말 그대로 그윽한 경지, 어느 골프장, 어떤 티 박스를 사용해도 70대를 칠 수 있고 가끔은 언더파를 치기도 한다. 하지만 골프의 진경(眞境)을 음미할 수 있는 높은 수준엔 도달하지 못했으며 계속 연습을 하지 않으면 스코어를 유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조금 미진한 부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구체(具體) - 7단
골프가 완성에 이른 상태로 평범한 사람의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의 단계를 일컫는다. 힘들이지 않고 언더파를 치며 한 번의 라운드에 또 다른 한 번의 생을 느낀다. 한 차원 높은 세계로 올라 깨달음의 깊은 상태에 도달해 있다. 

△좌조(坐照) - 8단
이미 스코어를 초월했고 대자연을 벗 삼아 동반자와 걷는 것이 최고의 낙이 되었다. 우주의 삼라만상에 대한 의문도 사라졌다. 100개를 치며 이런 경지에 오를 수 있고 로우 핸디가 되어서 이런 경지에 오를 수도 있다. 좌조의 경지란 결국 수졸(守拙)로 돌아가는 것이다. 

△입신(入神) - 9단 
신(神)의 경지에 올랐다. 승부를 초월했으며 승부가 주는 허무(虛無)까지 초월했다. 수행을 통해 경지에 도달한 것을 해탈이라고 한다. 산스크리트어로 해탈은 결박이나 장애를 벗어난 완벽한 자유를 의미한다. 이미 인간 세상의 영역을 벗어난 절대 초월의 경지에 도달한 상태다. 

골프를 하면 평소에 보이지 않던 사람들의 숨겨진 모습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골프를 인생에 비유한다. 둘 다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있고, 불확실성이 존재하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유사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골프를 잘 치고 싶으면 골프만 죽도록 사랑하면 된다. 권력이나 재화를 소유하기 위해선 음모와 술수가 필요하지만 골프를 잘 치기 위해선 그냥 골프 자체만 깊이 사랑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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